박재삼 문학관 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18.11.26
- 최종 저작일
-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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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부 박재삼 일생 관람
- 박재삼 일생
- 박재삼과 사람
제 2부 박재삼의 문학 흔적
-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 추억에서 –박재삼
- 박재삼 문학의 특징
제 3부 볼거리
본문내용
처음 글의 첫마디 제목보다 먼저 선택한 사진은 같이 간 친구들과 박재삼시인 동상과 같이 찍은 사진으로 시작하였다. 이 사진은 우리의 단체사진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사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리가 동상을 보자마자 각자 같이 찍어서 위에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애기를 주고 받은 생각이 크게 남기 때문이다. 문학관을 살펴보는 것도 친구들과의 하나의 추억이므로 웃으며 같이 애기하고 박재삼 시인의 일생을 느껴보았던 우리의 시선에서 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박재삼 문학관의 가는 길은 정말 자연과 함께 있는 문학관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문학관을 올라가는 중에 옆에 보니 공원도 있었고 확 트인 느낌이 들어 문학관에 나와 공원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옆쪽에는 산책길이 잘 있어서 주변 주민들이 많이 나와 산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문학관이 바다을 향해 돌출된 언덕을 깎아 만든 곳이어서 그런지 풍경도 좋고 한눈에 밑에가 보여 속이 트일정도 였다. 노산공원에 위치한 박재삼 문학관에 들어가면 제일 크게보이는 한옥이 있는데 그곳은 호연재 라고 하는데 조선 영조 46년 개성에서 이주해 온 손억년이란 분이 자기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설립한 서당입니다. 몇 년뒤 교육기관으로 출범시켰고,1905년뒤는 이름을 바꾸어, 사립학교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시대 일본군에 의해 이곳이 이 지역의 불온사상의 발상지라 지목하고 강제 철거를 하였습니다. 철거가 된 후에도 호연재는 주경야독으로 초당서재로 건립 운영되면서 훈장과 학동들들의 호연지기로 뭉쳐 3.1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한곳입니다. 2008년 삼천포의 대표적인 서재인 노산의 호연재를 다시 원형 복원하여 우리 지역의 학생들에게 인성교육과 전통예절교육, 다례 및 다도체험, 전통 혼례의식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