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체험하기
- 최초 등록일
- 2018.03.09
- 최종 저작일
- 2018.03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하나님의 임재 체험하는 한국 교회
①. 자기만족적 신앙(Faith of Self-Satisfaction)
②. 기복적 신앙(Faith of Fortune)
③. 이분법적 신앙(Faith of Dichotomy)
④. 진보하지 않는 신앙(후퇴하는 신앙, Faith of Stay)
⑤. 실용주의적 신앙(Faith of Pragmatism)
⑥. Show․Performance 중심의 신앙(Faith of Show․Performance)
⑦. 합리주의적 신앙(Faith of Rationalism)
Ⅲ. 마치면서
①. 바른 제자 교육
②. 바른 독서 교육
③. 바른 신앙 교육
본문내용
Ⅰ. 들어가면서
1973년 여의도에서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마치 1907년 평양의 한 교회에서 시작된 소위 말하는 ‘평양 대 부흥’과 같이 커다란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빌리 그래함 목사라는 한 외국인을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의도를 가득 메웠고, 이들은 그 날 하나님 앞에 거룩한 헌신을 각각의 모습으로 서원했다. 훗날 혹자는 이 날을 ‘한국 개신교 중흥의 날’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의 조류 속에서 과연 초심을 유지한 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까. 안타까운 시선으로 한국 기독교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기독교가 생긴 이래로 전무(全無)한 엄청난 부흥의 역사를 체험한 한국 기독교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이러한 현실을 가져온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을 살았던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는 어쩌면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바로 직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그는 ‘니콜라스 헤르만(Nicolas Herman)’이라는 호적상 이름의 사내로 1614년 로렌지방의 뤼네빌 근처의 작은 마을인 에리메닐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날의 무질서와 죄악을 참회하며 잠시 은수 생활의 길로 갔으나 이내 포기하고 무슈 드 피외베르의 하인으로 지내다가 스물여섯 살인 1640년 6월 중순, 파리의 보지라르 가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에 평수사로 들어갔다. 이 보잘것없는 형제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사랑과 능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이 흘러가자 그의 이름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특별히 그와 깊은 교제를 나눈 영성가로는 샬롱 쉬즈 마른 주교(루이 앙투안 드 노아유 대주교이자 추기경)와 중세 신비영성가인 페늘롱 대주교 등과 교제를 가졌으며 또한 그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서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