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후손이 쓴 한국의 선교역사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7.06.30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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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선교사 인선과 한국 파송
2장. 내한 선교사의 정체성 확립
3장. 한국인과의 동일화
4장. 독신 선교사의 결혼과 부모됨
5장. 선교사역의 유형과 특징
6장. 미국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
느낌과 감상
본문내용
1장. 선교사 인선과 한국 파송
1장에서 저자는 북미대륙의 이념과 제도적 뿌리, 즉 미국인 혹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펴본다. 미국에서 해외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해준 여러 대학의 선교이념적 배경, 또 미국의 남녀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오게 만든 주변 상황, 그리고 한국 선교의 시작과 발전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다. 한국 장로교의 선교운동은 시간적, 지리적으로 주한 선교부의 영역을 넘어 확대되어 나갔다. 한국 장로교회를 탄생시킨 구체적 시기가 어떻게 이러한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복음에 대한 문호를 개방한 1884년은 미국에서 선교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1880년대 미국 선교는 “우리 세대에 세계 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슬로건을 채택하였으며, 선교역사가 케네스 라투렛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 확장사(The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를 통해 “선교의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전천년주의 신학(Premillenialism)이 일어났다.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진 후에야 주님의 재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전도 외의 교육사업과 의료사업과 같은 사회선교는 모두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이후 1920년에는 자유주의 논쟁도 일어났는데, 이와같은 논쟁 속에서 선교사들은 전천년주의, 자유주의간의 절충안을 모색하였고, 모두가 선교사로 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같은 선교에의 관심 증폭은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 즉 “서구”와 “앵글로색슨족”의 우월감에 바탕을 둔 사회-진화론적 신념과 결합하여 선교가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기여한다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긴박함에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