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사상, 금장태 조선유학의 주역사상
- 최초 등록일
- 2016.12.01
- 최종 저작일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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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보통 우리는 충효, 조상 숭배,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시대의 옳지 못한 세대의 산물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현대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사상이라고 생각들 한다.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이러한 것들이 유학의 한 면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요즘에 잘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도덕의 회복을 근거로 내세우며 유교적 가족 윤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아직도 유학이 현대에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생각이 된다. 이 글을 통해 유학에 대해, 그리고 어떠한 이점이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유학의 한국적 전개를 보기 전에 유학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유학은 간단히 말하면 공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는 학문이다. 유학은 유교와 같은 뜻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유학은 유교를 성립시킨 학문으로 교학적 의미가 짙다. 공자는 ‘중용’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전대의 문화를 집대성하고 체계화시켜 유교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중심 사상으로는 인을 삼으며, 사랑, 예를 일으켜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덕을 베풀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덕치주의를 내세우기도 했으며, 각자에게 부여된 이름과 분수를 지켜야 안정, 평화 그리고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정명사상을 강조했다.
<중 략>
이에 비해 권근은 조선성리학 발달의 기초가 된 사람이다. 사단, 칠정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기(理氣)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이는 ‘임학도설’, ‘시경천견록’ 등에서 볼 수 있다. 조선은 성종 대에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유교에 기초한 통치 기구를 완비, 문화적으로도 세종 대에 이르러 융성기를 맞이한다. 그 결과 유학적 정친은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서 민생의 안정 또한 가져 왔다. 또한 성균관과 향교 건립을 통해 선성, 선현을 정신적 구심적으로 삼아 학교 교육을 실시하여 유교적 교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였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을 계승한 성균관은 국자감에 비해 국가적 의미가 더욱 컸고, 유교 이념의 사회, 국가적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과와는 다르게 한편으로 조선은 토지제도, 공납에서의 문제점으로 인해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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