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춘수님과의 가상 대담
- 최초 등록일
- 2015.12.03
- 최종 저작일
-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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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학생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훌륭하신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고,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견해를 듣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선생님의 여러 작품 중 1952년에 발표한 “꽃”이라는 시작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김춘수 님 : 예, 고마울 따름이죠. 간단하게 생각해봅시다. 원래 꽃이란 아름답고 따스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죠. 주제 자체가 그러한 꽃이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엔 하나의 몸짓에 불구하였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게로 와 꽃 되었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에게 관심과 배려를 갖게 되면 서로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아름답고 밝은 세상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 시는 인간상호 간의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소망하고 있죠. 그 시를 시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요즘같이 각박한 사회에서 서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인간관계 치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시라고 해석하고 싶군요.
- 학생 : 발표하신지 60여년이 더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작품의 의미도 조금씩 변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만큼 생명력 있고 훌륭한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선생님의 시세계 탐험에 앞서 선생님의 생애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김춘수 님 : 예, 저는 1922. 11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죠.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동경의 예술대학 창작과에 입학했어요.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6개월간 유치되기도 했죠.. 그 후 통영중학과 마산중. 고 교사를 거쳐 해인대학과 경북대, 영남대 교수를 지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햇습니다. 1945년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문화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본격적인 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유치환, 서정주, 청록파의 영향을 받았고, 30세가 넘어 비로소 나 자신의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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