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10.05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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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최초의 양식집
2. 일본식 건물
3. 영단주택 특성
4. 토막민
5. 해방촌 한국전쟁 피난민
6. 고상가옥
7. 새마을 운동 농촌파괴
8. 와우 아파트
9. 광주 대단지 사건
10. 달동네 벌집촌
11. 오늘날 아파트
본문내용
◎ 최초 양식집
우리나라에 서양의 주택이 전래된 것은 강화도 조약(1876)이 맷어지면서 부산(1876),원산(1880),인천(1883)의 세항구가 개항되고 이개항지와 서울을 중심으로 외국공관, 상사건물과 주택, 종교관리 시설 등의 서구건축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들 건축들은 대부분 우리의 손으로 지어진 것들이라 보기에는 어렵고, 서양사람들과 일본인 기술자에 의하여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인천의 세창양행 사택(1884)인데 사택의 형식상 본격적인 주택은 아니지만 서양식 거주시설로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들 주택을 시발로 하여 다앙한 외국인의 건물이 선보이기 시작하여 인천 선교사 합숙소(1884), 알렌 박사 별장(1893), 제임스 존스턴별장(1905) 등이 건설되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일부 지식계층에서는 완전한 서양식 주택을 건축하는 사례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이준씨 주택(1907)은 석재, 벽돌과 목조를 혼용한 2층의 네오 바로크 풍 건물로서 일본인 건축가인 가타야마가 설계와 시공을 진행하고 재료 일체도 일본에서 들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양식 건물이 한국인들을 위한 주택으로 지어진 것은 극히 일부 계층의 일로서 대다수 일반 서민들의 주택에 영향을 주기에는 그 간격이 너무 큰 것이었다. 따라서 일정 부분 간접적 영향은 극히 미미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양 문화의 갈등이 생기거나 그 과정에서 어떤 조정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일부에서 진행된 새로운 주택의 소개 정도였던 것이다.
◎식민지 시대 건축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 조선 총독부 관례를 근거로 일제 식민지 통치에 적합한 행정 조직과 사법 기구의 구성을 신속하게 이루어 나갔다 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걸쳐 행정 관청과 기타 공공 건물이 급속히 들어서게된다1922년의 ‘조선건축회’의 결성은 조선에 있던 일본창립 당시 한국인 회원은 단 한명에 불과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