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9.28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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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마산의 지명 유례
Ⅱ. 마산의 위치
1. 수리적 위치
2. 지리적 위치
3. 기후대적 위치
4. 관계적 위치
Ⅲ. 번영하는 오늘의 마산
Ⅳ. 마산 깡통골목
본문내용
마산은 고사에 의하면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일부라는 설이 있으나 삼한에 속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신라 35대 경덕왕 이전에는 마산항을 '골포', 마산을 '골포현'이라 불러 '굴자군'에 영속시켰는데 골포현 당시의 성지는 지금도 시내 환주산(추산동 정수장 부근)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경덕왕이 즉위하여 전국의 지명을 고치고 행정구역을 새로이 정할 때 굴자군은 '의안군'으로 하고 골포를 '합포' 또는 '합포현'으로 고쳐서 의안군에 영속시켰으며 동남도병마절도사를 두었다.
그 후 고려 때에 즉, 1274년 25대 충렬왕시대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정벌하려던 동정군의 근거지가 되고 나서 의안을 '의창현'으로, 합포현을 '회원현'으로 독립시켰으며 정동행성을 현 합성동에 축성하여 설치하고 창원포(현 창원시)에 의창현을 분치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3대 태종 때(1400년)에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서 '창원군'을 설치하고 도호부를 두었다. 부성은 고려 정동영이 자리 잡고 있던 현재의 합성동에 있었으나 그 후 11대 중종 때 부성을 오늘날의 창원시 의창동으로 옮겼다.
<중 략>
마산항의 부두기능을 높이는 동시에 불량 임항지역을 정비하고 부족한 대지조성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사업이 남성동에서 중앙부두에 이르는 해안 선착장과 서항일대에서 착수되었다.
교육문화분야의 발전도 괄목할 정도로 진행되었다. 1981년 경남대학교의 종합대학 승격에 이어 각급학교가 증설됨으로써 교육기관도 크게 확충되었다. 외형적인 도시발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오랫동안 등한시되어 왔던 문화 예술사업도 1984년의 마산시립교향악단의 창립과 갖가지 문화행사의 추진으로 차차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밖에 도서관 건립을 비롯한 여러 문화시설의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45만 마산시민의 쾌적한 생활환경조성을 위한 시민공단도 머지 않아 마련될 것이다.
우리 향토 마산시민은 역사가 입증하듯이 진취적이고 강인한 기질과 부정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움과 뛰어난 창의성을 지녔다. 아울러 풍요롭고 행복한 2000년대의 대마산 건설을 위해 모두가 합심하여 쉬지 않고 매진하고 있다.
마산 깡통골목
역사의 아픔을 가진 경남 마산시 반월동 이른바 '깡통골목'이 쉼터로 새롭게 단장됐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