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운동사] 3·1운동의 참가계층 - 지식인, 청년, 학생(구성원 각 집단의 투쟁), 농민, 노동자, 상인, 양반유생
- 최초 등록일
- 2014.06.19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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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지식인, 청년, 학생 - 구성원 각 집단의 투쟁
2. 농민, 노동자
3. 상인
4. 양반유생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지식인, 청년, 학생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는 민중이 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이 기본 동인이었지만, 지식인, 청년, 학생의 선도적인 역학은 자못 컸다. 이들은 시위 첫 날부터 ‘민족대표’의 자세를 불신하여 독자적으로 3월 5일 서울 시위를 계획하였고 실제로 주도하였다. 지식인, 청년 학생들은 서울을 비롯한 도시 지역에서 유포된 선언서, 각종 유인물과 도시의 시위 경험을 각 지역으로 전파함으로써 운동의 확산을 꾀하였다. 또한 이들은 선언서, 태극기, 독립만세기를 제작․배포하거나, 민중을 동원하고 시위 대열을 이끌어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각종 비밀결사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이들의 두드러진 활동은 각종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여 선전․선동 작업을 펼침으로써 투쟁 열기를 고취시킨 것이었다. 그를 위하여 선전․선동물의 다양한 형태를 역사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거나 새로이 개발하여 이때 새로운 선전물인 신문의 종류만 해도 30여종에 이르렀다. 이들 매체에는 독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면서 민족의 총궐기와 결사항쟁을 촉구하는 글이 많이 실렸다. 이같은 선동은 ‘민족대표’의 대외 의존적 무저항주의와는 달리 민족의 주체역량에 의한 독립 쟁취를 주창한 것이었다. 한편 이들은 일본 상품배척, 납세 거부 등 일상적 경제투쟁을 촉구하여 일제의 경제지배 질서를 교란․부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더 나아가 민중에게 파고들어 그들의 처지와 요구에 걸맞는 태의 투쟁을 촉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존의 창가를 보급하거나 각종 운동가를 새로이 제작․보급하여 투쟁의 열기를 고무하였으며, 학교의 악대를 동원하여 시위 대열을 이끌어 나갔다. 이같은 선전․선동물을 제작, 배포하는 조직체계도 발전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사 이야기 20-우리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 이이화, 한길사, 2004
한국사 47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국사편찬의원회, 탐구단문화사, 2001
3.1독립운동과 민족의 자존, 장백일, 2000년 창권 239호, 현대사회문화연구소, 2003
3.1운동과 민족의 자존-3.1절 84주년에 부쳐-, 장백일, 2000年 통권 239호, 2003
증보 3.1운동사, 윤병석, 국학자료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