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대적을 무찌르시는 하나님의 특수 전술사사기 7장 9-23절목차1. 들어가며2. 소수를 사용하십니다.3. 상상치 못할 방법을 사용하십니다.4. 대적을 자멸케 하십니다.5. 맺으며참고문헌1. 들어가며전쟁을 할 때 작전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됩니다. 따라서 정면 전쟁을 수행하는 지도자들은 상황에 따른 전락 전술에 능해야 합니다. 공격이 주효할 때가 있는가하면, 오히려 특수한 전술이 주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러한 전술에 가장 능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전쟁에 능하신(시 24:8)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술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2. 소수를 사용하십니다.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같이 많은 적들을 소수를 사용하여 멸하셨습니다 (12, 22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전투는 수의 다수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쓰시지 않고 소수를 사용하셔서도 능히 당신의 지혜와 권능으로 승리를 쟁취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승리의 원인이 되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시 46:9). 심성이 부패한 사람들은 만약 수가 많아서 이기게 되면 자기들의 세력은 자랑해도 하나님은 자랑하지 않습니다.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숫자가 많음을 미신처럼 신봉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소수를 사용하여 승리케 하심으로써, 그들의 교만에 일침을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소수로 다수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할 때 크고 놀라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음을 믿읍시다.3. 상상치 못할 방법을 사용하십니다.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함성을 지르는 괴상한 작전을 펼치십니다(19, 20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적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여 적들을 격퇴하십니다(수 6:16, 17). 이는 무궁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한 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실로 하나님께서는 전열이 다 정비되고, 자신들은 힘이 있다고 자부하는 적들에게 그런 것들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교훈하시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있고 흔히 볼 수 있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도구들을 사용하셔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십니다(왕하 6:14-19). 이제 상상치 못할 방법으로 나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시렵니까? 그 놀라우신 지혜를 찬양합시다.4. 대적을 자멸케 하십니다.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적군으로 하여금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셨습니다(22절), 즉 하나님께서는 특수 전술을 사용하셔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적들로 자멸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격과 사건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지혜에 따른 결과로서, 당신의 백성에게 완전한 승리를 안겨다 주는 전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자멸게 하실 때, 당신의 백성들은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따라서 이 전술 속에는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이외에도, 훗날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찬양대를 앞세우고 찬양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 자손이 피차 살육하심으로써 또 한 번의 기막힌 특수 전술을 사용하셨습니다(대하 20 : 20-23). 따라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자멸케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우리가 자멸할지도 모릅니다.
설교말씀하나님의 정예 부대사사기 7장 1절목차1. 들어가며2.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3. 긴장해야 합니다.4.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5. 맺으며참고문헌1. 들어가며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적 요소, 곧 군인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아무리 최고의 병기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오합지졸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사기가 충천할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잘 훈련된 군사들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있음을 하나님의 정예 부대인 기드온의 삼백 용사를 통해 보여줍니다.2.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두려워서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명하십니다(3절). 진정 하나님의 정예 부대의 군인은 두려움이 없는 자라야 합니다. 실로 전쟁에 있어서 용기와 담력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승리의 원동력이 됩니다. 반면에 두려움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할 수 있는 것마저 못하게 하는 패배의 원인이 됩니다. 사실 전쟁에 나가서 집 걱정, 가족 걱정으로 인해 마음의 담력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은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담대한 자라야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그러기에 두려움은 외부의 보이는 적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의 정병(精兵)으로 부름받은 여러분은 혹시 쟁기를 들고 뒤돌아보는 용기 없는 위인은(눅 9 : 62) 아닙니까? '담대하라'는 그리스도의 격려에 힘을 얻고(요 16:33)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갑시다!3. 긴장해야 합니다.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은 일만명 중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를 제외하고,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아 먹는 삼백명을 사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5-7절). 이는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장을 풀지 않는 자를 사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정신 상태가 느슨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며, 언제라도 당신의 명령과 각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사단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삼키려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 늘 깨어 근신하는 자, 항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려고 긴장하는 자를 들어 쓰십니다(롬 13:11; 벧전 5:8). 실로 긴장하는 자에게만 온전한 헌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4.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본문에서 우리는 기드온의 작전 지시에 그의 용사 삼백명이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5-23절). 정녕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할 만한 사람을 택하여 그의 정예 부대의 군사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말은 많은데 순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예 군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은 군사라도 명령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 없으면 그 훈련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그 어떤 화려한 헌물보다.순수하고 정확한 순종이 제일입니다(삼상 15:22). 가부도 묻지 않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지도자를 믿고 그의 지시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정예 부대의 군사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어리석고,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순종하는 자가 정말 좋은 군사입니다. 이제 우리도 내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 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에 붙잡힌바 된 지도자를 온전히 따릅시다.
설교말씀하나님께서 쓰시는 사역자사사기 6장 14-17절목차1. 들어가며2. 자신의 무능함을 아는 자입니다.3. 스스로 작게 여기는 자입니다.4. 은혜의 징표를 구하는 자입니다.5. 맺으며참고문헌1. 들어가며사람이 어떤 일을 맡아 그 일에 성심 성의를 다한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에 사역자로 쓰임받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매우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나 지명하여 쓰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당신의 사역자로 사용하실까요?2. 자신의 무능함을 아는 자입니다.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라고 말합니다(15절). 이는 기드온이 자신의 무능을 정확히 알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로 하나님은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정녕 자신이 아무 능력도 없다고 고백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장인의 양을 치면서 자신에게 아무 능력도 없음을 알게 된 모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역자로 쓰셨던 것입니다(출 4:10). 이런 자들은 사역을 마치고 그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반면에 나는 뭔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도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겸손히 자신의 무능을 진솔히 고백합시다.3. 스스로 작게 여기는 자입니다.본문에서 기드온은, 므낫세는 약하고 그 중에서도 자기는 아비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15절). 실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크게 여기는 자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무가치함을 인식하고 작게 여기는 자를 사용하시고, 그를 높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생각하는 바울을 이방 선교를 위한 복음의 위대한 사역자로 쓰셨던 것입니다(고전 15:9). 그리고 사무엘도 사울 왕에게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삼상 15:17)라고 의미있는 책망을 했습니다.한편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자는 쓸데없이 대적을 만들지 않고 실수하지도 않습니다. 실수는 스스로를 크게 여기는 교만한 자들의 전유물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작게 여기십니까? 아니면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크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스스로를 작게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시 48:1).4. 은혜의 징표를 구하는 자입니다.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자기와 말씀하신 이가 주(主)시라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기도합니다.(17절). 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징표를 구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모든 일이 되어짐을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정녕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할 만한 은혜의 표징이 없이 사역자로 나간다면 비록 수고는 많이 한다 하더라도 열매는 맺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나눔과 교제의 증표인 은혜의 표징을 구한다면 그 사역자는 확신과 감동으로 그 마음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설교말씀신앙인의 의문사사기 6장 14-17절목차1. 들어가며2. 고통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3. 과거의 구원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4.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5. 맺으며참고문헌1. 들어가며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납니다. 또 거기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던집니다. 그런 의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정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기드온을 통해 신앙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을 몇 가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의문점들과 그 해결 방안을 살펴보려 합니다.2. 고통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어찌하여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미치었느냐고 의문을 던집니다(13절), 실로 이 땅의 사람들보다 더 경건히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왜 자신이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욥 13:20~23), 즉 그것은 정녕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억울한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입니다.특별히 우리는 내가 당하는 고통을 너무나 큰 것으로, 또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잠깐이요 오히려 많은 유익을 주며(약 5:11) 또한 성숙에 이르게 하는 훈련의 한 과정으로 간주하십니다(약 1:2-4). 지금 받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 안 계신다고 말하는 것처럼 경솔한 짓은 없습니다. 고통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문을 던지고 계십니까? 이제는 그러한 회의와 불평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합시다.3. 과거의 구원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본문에서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셨는데 이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는 것이냐고 합니다(13절). 즉 과거의 구원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능력이 계신 분 같으면 지금 우리를 구원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그렇습니다. 회의에 일단 빠져버린 신앙인들은 과거에 체험했던 구원의 은혜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발견되는데, 그토록 예수를 따라다녔던 수많은 무리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 …남을 구원하였으니…자기도 구원할지어다…'(눅 23 : 35)라는 말로 비아냥거렸습니다. 즉 그들은 철저히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의심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과거에 베푸신 구원의 역사까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실로 과거에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들은 곧 오늘과 내일 베풀어질 구원의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4.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본문을 보면 기드온은 이제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에 붙이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습니다(14절). 즉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실로 우리 인간은 심약한 본성을 소유하였기에 어려움이 지속되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기 쉽습니다. 잘 견디다가도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버렸구나하고 자포자기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폐해지지 않습니다(요 13:1). 하나님의 사랑은 현재적이고 영원한 것입니다(요 3:16). 조건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계십니까? 그것만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깁시다(롬 8:31-39).
사사기 6장 성경적 이해(주해)와 현대적 적용미디안의 압제와 기드온의 소명목차1. 사사기 6장 개요2.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6:1-10)3. 여호와의 사자와 기드온의 대면 (6:11-24)4. 기드온의 종교 개혁(6:25-32)5, 하나님께 다시 표징을 구한 기드온(6:33-40)참고문헌1. 사사기 6장 개요여선지자이며 사사인 드보라의 활약에 힘입어 4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린 이스라엘 백성들이(5 : 31) 사사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대로 드보라 이후 다시 우상 숭배에 빠진데 대한 기록이다. 즉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족속들의 침략을 받아 7년 동안 고통을 당해야 했다(1-5절). 그러자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고(6, 7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로 기드온을 부르시는 악순환의 역사가 본장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11-40절).이처럼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징계는 곧 신명기적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신 4, 28장). 이 신명기적 원칙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근거한 것으로 구약 성경 중 역사서와 선지서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엔 하나님의 공의가 발동되어 징계가 그들에게 임하나 그들이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때에는 다시 국력(國力)을 회복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는 신명기적 원칙이 역사서 및 선지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결국 시대에로 접어드는 전환기적 역사가 바로 사사 시대이므로 여기에는 더욱더 신명기적 원칙이 잘 반영되어 있다. 본장은 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원칙을 다시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7-10절).이와 같이 구약에 서술된 이스라엘 역사는 우연의 산물도 아니며, 인간의 자기 개발의 과정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진 거룩한 역사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되쯤이면 올라와서 그 곡식밭에다 가축을 풀어 놓아 방목을 했으므로 이스라엘의 식량이 될 곡식을 싹 쓸어 버렸다(4, 5절). 이들이 7년 동안 그렇게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니 어느 때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어려웠을 것이다(1절).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유목민들을 상대로 싸워보기는 커녕 산(山)으로 피하여 그곳에서 구멍과 굴을 파서 생활하게 되었다(2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될 때 얼마나 연약해지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연약해진 원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신앙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셨다(7-10절). 분명히 그들이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도 이러한 신앙의 회복은 필수 조건이었다.이상과 같은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 그 다음 이스라엘의 회개, 그 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사사 시대 역사의 전형적인 악순환을 분명히 보게 된다. 사실상 사사 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악순환의 역사는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출애굽의 역사와 왕국 시대의 역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신약 시대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도 적용된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죄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계속 죄 가운데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방법으로 징계의 채찍을 드셔서 성도로 하여금 그 죄악된 길에서 떠나게 하신다. 심지어 성도 자신이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본문에서 선지자를 보내심 같이 (7-10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충고자를 보내셔서라도 반드시 잘못을 깨닫게 해주신다. 따라서 그러한 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켜 죄악의 길에서 떠나는 것뿐이다.두려움의 원인,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에게 가나안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로 인해 떨지 말라고 권고하셨다. 그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는 길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함과 동시에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3. 여호와의 사자와 기드온의 대면 (6:11-24)기드온이 압제자인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찾아와(11, 12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대화의 내용은 신정설(Theodicy)의 문제였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신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려 이방인들의 압제로 인해 고통당하게 하시는가의 문제였다(13절). 이러한 기드온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결코 망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의 백성이 적들에게 억압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의사표명을 분명히 한다(14~16절). 그러자 기드온은 그러한 말을 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곧 하나님이심을 증거해 줄 만한 표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17, 18절), 이에 여호와의 사자는 그 요구를 흔쾌히 들어 주었는데 이를 기념하여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던 곳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칭한다(19-24절). 결국 이로써 기드온의 의문은 명쾌히 풀렸다 할 수 있다.그러나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곧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와 대화함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우상 숭배한 것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죄를 지어도 그들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 그렇지만 그들이 죄에 빠졌을 때에는 침묵하시거나 징계의 채찍을 드신다. 이스라엘이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를 받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미처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한편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자신의 어려운 모든 처지가 금방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죄를 범하여도 하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시니 그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되었다(3:10).그밖에도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을 때(삼상 10:7)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적과 싸울 때마다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증거였다(삼상 10:8). 그러나 그가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을 때(삼상 16:14), 그는 두려움에 잠겼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비천한 목동이었던 다윗 역시 하나님의 신이 임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삼상 16:13) 이스라엘을 유사 이래 가장 강한 국가로 일으켰다.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았던 인물이다(시 13:5). 이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며(마 28:20),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행 1:8) 말씀하셨다. 그래서 겁 많고 비천했던 그의 제자들도 결국 성령을 받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서(사 7:14 ; 마 1:23)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 후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어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 더욱이 성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었다(고전 3 : 16). 이런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한 사람이다. 다만 각기 받은바 은사가 달라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른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것이다(고전 12:4-31).그러나 앞에서 예로 들었던 인물들이 받은 것과 같은 은사는 특별히 주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즉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상황 가운데 비상한 은사를 그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은사 받은 한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돕는 사25).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평강은 세상의 고통과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평강이며, 동시에 육체의 평강 뿐 아니라 무엇보다 영혼의 평강이다. 그리고 이것은 '명강의 왕’ 이 되신 그리스도께서(사 9:6, 7)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평강이며(학 2:9),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강이다(롬 8:39),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평강을 당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시 29 : 11), 그러기에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 안에 거하여 이 평강의 복을 누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 평강을 나눠 주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주님께서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가르치셨다.4. 기드온의 종교 개혁(6:25-32)기드온이 사사로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후 제일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알의 단을 헐며 아세라 상을 찍는 등(25-28절)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성읍 사람들이 쟁론을 벌이나 하나님의 보호 하에 기드온이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는 장면이다 (29~32절),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 아래서 7년 동안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했던 원흉인 이 우상들은 기드온 당시 뿐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상 걸림돌이 되었다. 때문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 우상 숭배를 금지하겠다(출 23 : 132, 9:34: 12 : 신 4:23~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 때부터 가나안 땅의 각종 우상이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에 서서히 침투해 들어왔으며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수백 년 후 요시야 왕이 철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기까지(왕하 23 : 1-25) 이스라엘 사회에 만연했던 우상 숭배의 관습은 지속적으로 존속했다.아무튼 기드온의 종교 개혁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