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4.04.19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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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경리의 생애
2. 소설 토지의 줄거리
3. 대하소설로서 토지의 의미
본문내용
1. 박경리의 생애
작가 박경리는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랑생활을 자주 했고, 또 이곳저곳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니까 작가는 아버지는 있으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셈이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반항정신의 소산>에서) 박경리는 책 읽기와 시 쓰기를 통해 성장기의 고독과 반항의 감정을 추슬렀다. “아궁이며 이불 속이며 노트를 감추어가면서 매일매일 일기같이 시를 썼다. 그것은 묶여 있는 의식이 종이에 소리 없이 폭발한 것이었다.”(<못 떠나는 배>에서)
진주여고에 입학했으나 “여자가 공부를 하면 뭐하냐”라며 학비를 대주지 않은 아버지에 반발해 일 년 간 집에서 쉰 끝에 1945년 학교를 졸업한다. 독서 체험에 대해서는 한 대담에서 밝힌 작가의 육성이 남아 있다.(송호근과의 대담,《작가세계》,1994년 가을호)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녀였어요. 나의 의식을 형성시킨 글 읽기는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천시절(신혼 초)까지 짧은 동안 이루어졌지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본 소설과 시, 일역된 서양 소설 따위를 책방에서 쫓겨날 때까지 선 채로 읽은 적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번역 소설은 세 종류가 출판되었는데, 모두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어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 하나 있어요. 보헤미안처럼 살았던 일본의 이상(李箱)과 같은 시인이었어요. 두부장수가 종 치며 지나가는 아침에 내려앉은 안개가 시인의 임종을 맞고 있다는 유작집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결혼 후에는 영주 아버지(남편)의 책에 의존했습니다. 영주 아버지는 사상 관련 서적을 주로 갖고 있었지요. 당시에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 주업이었습니다. 인천으로 이사한 뒤 조그마한 책방을 냈어요. 그때 책을 헐값에 많이 사들였지요. 책을 근으로 달아서 사는 것이 당시에는 즐거움의 하나였는데 온갖 종류의 책이 묻어 들어왔지요. 인천 시절의 책 읽기에서 차츰 역사의식을 깨치게 되었지요. 일본판《세계사대계》를 읽으면서 제국주의의 듯을 알게 되었고, 마르크스와 바쿠닌 등의 사회주의 사상을 두루 접하게 되었지요.”
참고 자료
박경리 저,《토지》(전16권), 솔, 1994.
박경리 원저, 토지문학연구회 편,《청소년 토지 세트》(전12권), 이룸, 2003.
서울대학교 편집,《권장도서해제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문학사전편집위원회 엮음,《문학사전》, 강, 1997.
신경림, 박경리 등 저,《나의 문학 이야기》, 문학동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