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불교 전래 수용
- 최초 등록일
- 2014.04.18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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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신라의 불교 전래와 수용, 그리고 공인
Ⅲ. 신라 불교의 특성
1. 호국불교사상
2. 미륵사상
3. 정토사상
Ⅳ. 신라불교의 승려
1. 원광(圓光)
2. 안홍(安弘)
3. 자장(慈藏)
4. 원효(元曉)
5. 의상(義湘)
Ⅴ. 맺음말
본문내용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문화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 고등학생이라면 ‘수학여행’의 장소로 신혼부부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곳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신라’라는 국가는 친숙하며,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는 해외여행과 함께 우리 국민들의 여행패턴이 바뀌면서 그 인기가 주춤해졌다.
필자는 우리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혀있는데도, 현재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신라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의 바탕이 되었던 신라 불교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고구려에서는 이미 소수림왕 2년(372년)에 불교가 전해져, 고국양왕 9년에는 왕이 “불교를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는 교를 내린바 있으며, 광개토왕 2년에는 평양에 9사를 창건하는 등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더구나 신라에서는 왕자가 고구려에 인질로 간 사실이 있고, 왕위 계승에까지 고구려의 영향력이 막대하게 미치고 있었으므로 신라가 고구려에 종속된 형태로 불교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신라에서는 눌지왕대 불교가 전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공인되는 시기는 법흥왕대로서 약 100여 년간의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그것은 ‘이차돈의 순교’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차돈의 순교’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야 한다.
신라의 불교는 이차돈이 순교한 법흥왕 14년에 바로 공인이 된 것은 아닌 듯하나, 이차돈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공인되었다.
여기서 갈등을 겪던 신라의 불교는 그것을 공인하려는 왕실측과 무교신앙을 고수하며 반대해온 귀족과의 갈등으로 이차돈이 순교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윤회전생사상과 전륜성왕과 미륵보살이라는 불교의 사상에서 그 타협점을 찾아 공인에 이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불교를 수용한 원인은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로서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후 신라의 불교는 재래의 토속신앙을 극복하면서 고대국가의 이념과 사상을 통일하고 국가발전을 비는 호국신앙으로 수용 발전되었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불교의 호국사상은 왕권의 신성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불교왕명을 낳았다.
이처럼, 신라의 불교는 도입부터가 삼국 가운데 뒤떨어졌고 불교의 공인시기도 가장 늦게 나타났다.
참고 자료
{三國史記}
{三國遺事}
{海東高僧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