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가의발전사] 우리나라 여가의 역사(한국 여가의 발전과정)
- 최초 등록일
- 2014.03.25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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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여가의 개념 미형성기(해방 이전)
Ⅱ. 여가의 과도기(8.15해방~1961년)
Ⅲ. 여가의 발아기(1962~1971년)
Ⅳ. 여가의 도약기(1972~1981년)
Ⅴ. 여가의 성장기(1982~1991년)
Ⅵ. 여가의 성숙기(1992~2002년)
Ⅶ. 여가황금기(2003~2012)
본문내용
한국의 경우, 고대부족사회이래 여가활동에 대한 문헌자료가 거의 없어 여가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해왔다. 따라서 해방이전의 여가현상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의 여가발전과정을 여가개념 미형성기, 과도기, 발아기, 도약기, 성장기, 성숙시 등 6단계로 분류하여 각 시기별 여가정책과 제도, 여가개발과 계획 등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1. 여가의 개념 미형성기(해방 이전)
고대 부족사회에서는 놀이 및 여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부족으로 그 실상에 접근하기가 곤란하다. 단지 초기 공동체사회에서는 긋 등의 제의가 자주 행해줬었는데, 이 행사가 일종의 제례적 성격을 띤 여가행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6-7세기의 청동기사회에 정착형 농사가 시작된 사실은 바로 이 시기에 국가형태를 띤 부족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기존의 종교적 제의가 추수감사제와 같은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실제로 천신, 태양, 산수 등 자연을 숭배하는 제의적 샤머니즘(shamanism) 외에도 농경문화의 보편적 의식인 추수감사제가 여러 가지의 형태로 발전하여 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시월제 등을 들 수 있다.
삼국시대에서는 계급성이 강하였기 때문에 상류층은 사교적 여가행태를 띠었는데 비하여, 서민계급의 놀이는 불교행사 및 무당행사 등의 축제의식과 결부된 놀이를 즐겼으며, 당시 성행하였던 놀이로는 활보기, 말 타기, 그네타기, 연날리기, 씨름, 죽마 등이었다. 한편, 신라시대 신분사회의 특징을 나타내 주는 골품제도는 놀이의 공간 및 기회를 한정시켰으며, 특히 귀족층의 사치와 향락은 경주에서 발견된 안압지, 임해전, 포석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건국 이래 대륙문화의 왕성한 수입으로 문물제도가 정비되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던 고려시대에는 여러 가지의 불교행사가 성행하였으며 정월의 설, 오월의 단오, 팔월의 추석 등의 명절과 사월초파일, 이월의 연등회, 십일월의 팔관회 등의 국가적 불교행사에는 호화로운 연회와 온갖 유희를 갖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특징은 한 마디로 유한계급의 형성이 고착화되었다는 점이며, 특히 단오의 경우, 상류계급과 서민계급간의 놀이형태가 상이하였다. 즉, 상류계급에서는 격구와 투아를 했으며, 일반 부녀자는 그네뛰기, 그리고 남성들은 씨름과 석전 등 여러 가지 유희와 오락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