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12.23
- 최종 저작일
- 2013.08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사고에 관한 레포트이며 조선시대 위주로 서술되어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선시대 사고
2. 조선시대 사고 건축양식
3. 조선시대 사고 보관 서적
Ⅲ.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예조가 아뢰기를, “태조 대왕의 수용과 선왕(先王)의 실록(實錄)을 도(道) 내의, 사람들이 찾기 힘들고 안전한 곳을 찾아 간직해 두었습니다. 지금 왜적이 호남을 침범하려 하므로 전주부윤(全州府尹) 이정암(李廷)이 생각지 못한 변고가 있을까 걱정하여 행재소(行在所) 근처로 옮기자는 건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니 급히 사관(史官) 한 사람을 보내어 태조 대왕의 수용은 먼저 올려보내고 실록은 왜적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임금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하도록 하라. 실록을 옮기는 것에는 만전(萬全)의 계획이 있어야하니, 이런 뜻을 내려가는 사관에게 말하라.”고 하였다.
<중 략>
국가나 왕실의 의식이나 행사가 이 완료되면 의궤를 제작하기 위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였는데, 관원은 의식을 추진한 도감의 도청 담당자들이 그대로 임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의궤청은 도감에서 행사 중 작성한 일지, 각 관청과 주고받은 관련 문서, 행사의 리허설로 그린 반차도 등 자료를 수집하여 의궤를 편찬하였다.
3)의궤의 관리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되는데, 보통 5~9부를 제작하였다. 악기조성도감의궤처럼 어람용 없이 2부만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어람용 1부를 포함하였다. 어람용은 규장각이나 외규장각에 보관하였고, 분상용은 춘추관과 지방의 사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서 등에서 보관하였다.
참고 자료
박대길, 「조선후기 적상산사고 연구」 , 전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2010년
박대길, 「조선시대 사고관리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