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김옥균 연보
- 최초 등록일
- 2003.01.11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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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옥균의 생애와 행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목차
<김옥균의 일본에서의 행적>
① 도하신사의 인심동비
② 영구사의 가명원노문 묘비명
③ 청산영원의 김옥균묘
④ 진정사의 김옥균 묘
본문내용
<金玉均의 일본에서의 행적>
金玉均(1851-1894. 3, 호; 古筠, 본; 안동)은 1884년 조선의 근대화를 달성하고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대표적인 개화파이다. 충청도 공주의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7세때 서울의 세도가였던 재종숙 김병기에 입양되면서 그의 인생 행로에서 입지의 발판이 준비되었다. 또한 오경석, 유대치와 같은 중인출신의 개화파를 만나면서 세도가의 후손으로서의 수구적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 그는 22세되던 1872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리로서 조선의 근대화 정책에 참여하게 된다. 1879년 개화승인 李東仁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근대화 실태를 알아보게 하였으며, 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의 일본파견을 추진케 하는 등 조정의 개화정책을 주도하였다.
김옥균은 1884년 망명하기 전까지 3차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다. 그의 1차 일본 방문은 1882년 3월 이루어졌다. 3월 17일 부산을 출발한 그는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나가사키의 재판소, 현청, 현의회, 사범학교, 전신분국, 각국 영사관 등을 방문하였다. 5월 오사카에 들어가 府知事와 조폐국장을 만났으며, 오사카 鎭臺와 활판소 등도 시찰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