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해석 (메이지유신~세계1차대전)
- 최초 등록일
- 2013.06.06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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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32. 文明開化
33. 藩閥政治
34. 立憲政治
35. 日淸・日露
36. 資本主義の発展
본문내용
32.文明開化
문화면에서의 근대화도 잇달아 행해졌다. 1872(明治5)년 학교의 학생(학제)을 제정하고, 어떠한 직업이나 신분의 사람이라도 국민 모두가 교육을 받도록 했다. 또 구미(유럽, 미국) 각국에 유학생을 보내 구미로부터 학자와 기술자를 초대하여 진보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힘썼다.
사람들의 생활면에서도 태양력을 쓰는 것이나 하루를 24시간(24시간제), 1주일을 7일로 하고 일요일을 휴일로 하는 서양의 제도(七曜制)를 받아들였다. 기독교도 외국 정부의 항의로 인정받게 되고, 활판 기술이 발달하여 정치나 사회적 일을 전하는 신문도 잇달아 발행되었다. 東京의 銀座通에는 벽돌로 지은 서양풍 건물이 지어지고 도로에는 밝은 가스등이 켜졌다. 상투를 잘라 단발로 하고 양복을 입는 것이 새로운 풍속이 되었다. 또 그 전까지 잘 먹지 않던 소고기를 먹게 하는 すきやき 요리점도 생겼다. 이와 같이 교육, 학문, 의식주 등 생활 전반에 새로운 서양의 문화나 습관을 받아들여 가는 것을 文明開化(문명개화)라고 불렀다.
< 중 략 >
일본의 근대산업은 1890년 쯤이 되면서 방적업(섬유를 가공하여 실을뽑는 일), 제사업(고치나 솜 따위로 실을 만드는 일) 직물업 등으로 기계화가 진행되어 명주실, 실을 중국, 조선, 미국에 유출했다. 그 후 일청·일러전쟁 결과 풍부한 자본이 손에 들어오게 되고 1901년에는 일본에서 최초의 관영 가 완성해 중공업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제철 외에 조선 기계 등의 제조도 시작되었다.
이러한 산업 혁명의 결과, 자본주의가 발달해, 봉건사회에는 없었던 새로운 사회 문제가 생겨났다. 농촌에서는 높은 세금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토지를 팔고 소작인이 되는 가난한 농민이 늘고, 농촌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된 소작인은, 도시로 나와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일하는 공장의 노동 조건은, 대단히 나빴다. 반면, 넓은 토지를 사 모아, 스스로는 경작을 하지 않고, 소작료로 생활하는 기생지주가 점점 더 늘었다. 그들은 의원 (다액납세의원)이 되어 의회에도 진출했다. 당시, 이 대지주나 회사를 경영하는 자본가는 일본의 정치에 큰 영향력을 가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