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과 식민치하, 식민과 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 일제시대), 식민과 식민화, 식민과 식민지배(식민지지배), 식민과 식민적 근대성, 식민과 식민주의역사관(식민주의사관, 식민사관)
- 최초 등록일
- 2013.03.30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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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식민과 식민치하
Ⅱ. 식민과 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 일제시대)
1. 식민지수탈론
2. 식민지근대화론
3. 평가
Ⅲ. 식민과 식민화
Ⅳ. 식민과 식민지배(식민지지배)
1. 노동력 강제 동원
2. 군 관계 강제 동원
Ⅴ. 식민과 식민적 근대성
Ⅵ. 식민과 식민주의역사관(식민주의사관, 식민사관)
1. 타율성 이론
1) 만선사관
2) 반도적 성격론
3) 사대주의론
2. 정체성 이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식민과 식민치하
일본은 봉건 국가에서 출현했으나 한국은 농업-행정주의 국가였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19세기 이전에는 농업의 상업화가 널리 발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중국보다 더 강력한, 땅을 소유한 향신층이 있었다. 또한 일본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경쟁에 의한 이익이나 도시 상업발달이 없었고, 주앙집권적인, 표면적으로는 강력한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씨 왕조”는 사실상 넘치는 자원을 놓고 귀족 정치와 경쟁하는 나약한 국가였던 것이다. 지방에서는 그 힘이 미약해서 농민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지주층은 19세기에 오랫동안 권력을 발휘해왔다. 이 계층은 그동안상업화로의 진출이 억압받아왔기 때문에 1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상업화에 뛰어들었고 이들은 일본이 상륙할 무렵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은 한국 지주들을 이용해서 쌀을 수탈하고 지방을 안정 시켰다. 지주들은 공업이나 상업에 투자 할 어떤 동기도 부여받지 못했다. 상업과 공업으로 성공한 몇 안되는 사람들은 거의 일본과 결탁해서였다.
지주건 농민이건 농업의 다양화, 확대화, 개혁에의 어떤 동기도 없었다. 대개의 한국 농민들은 식민 통치기간 중 그저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중 략>
이것은 한국이 왕조의 교체 등 사회변혁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구조에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특히 근대 사회로의 이행에 필요한 봉건사회를 거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단계에 머물려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였던 후꾸다는 근대사회의 성립을 위해서는 봉건제도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전제에서, 한국이 근대화에 늦어 혼미하고 있는 근원을 조선에 봉건제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사를 비교하여 20C초의 한국의 사회 경제발전단계는 일본에 있어 고대 말 10C경의 후지와라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경제사학에 의하면, 역사는 원시공동사회->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한다고 한다. 따라서 후꾸다의 주장대로 20C초의 한국이 일본의 고대 말에 해당한다면 아직까지 봉건제조차 성립되지 않았다는 뜻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확실히 정체된 사회경제구조를 가진 것임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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