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병합 전후 일본인의 한성부(경성부) 이주.hwp
- 최초 등록일
- 2013.03.18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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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일본인 한성부(경성) 이주
3. 한성부(경성)의 변형과 왜곡
본문내용
1. 머리말
대체로 재조선일본인은 1876년 부산의 개항으로 조선에 이주하여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귀환한 일본인으로 그 역사는 약 70년에 이른다.
18ㅌㅌ년 무슨조약으로 부산,인천,ㅌㅌ의 세 군데 항구를 개방한 이후, 일본인의 ~~이주가 활발해졌다. 그 후 한성은
특히 1885년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한성조약을 계기로 본격적인 일본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식민지기 일본인의 해외이주가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의 해결책으로, 혹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인적자원의 배치로 이해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은 당시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단순히 체제의 ‘모순’이나 국가‘정책’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보다 나은 경제적 기회와 신분상승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이주를 선택한 일본인들의 다양한 동기와 배경을 추론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중 략>
밝고 깨끗하고 활기차며 신문명을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지배자의 마을인 남촌과 어둡고 더러우며 침울한 예전 모습 그대로인 피지배자의 마을인 북촌의 대비는 결국 일본인에 의해 조장된 서울공간의 왜곡현상의 전형적인 실례일 것이다.3)
특히 조선인들의 대표적인 거리, 종로의 당시 모습에 대해서는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에도 설명되어있다. 종로는 일제하에도 조선인의 상업 중심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전통과 근대의 공존은 전통에 뿌리를 내린 정상적인 근대화의 지향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왜곡된 엇물림의 관계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을 보여주는 예시로 이광수의 <박영호씨를 만난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일부분 발췌하자면 “ 2년 만에 찾은 종로가 변한 모습은 전에 없던 자동차집이 많아지고 소위 현대식 양옥이 전보다 많아진 것, 또 전차를 타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한 모습은 조선 사람에게 상관이 무엇이며 조선 사람의 알 바가 무엇이냐”라고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