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 이세민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12.15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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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당태종 이세민에 대한 일대기와 그의 리더쉽 분석입니다.
목차
1. 소릉(昭陵)에 묻힌 “정관의 치”를 보여준 황제
2. 형제를 죽이고 황제가 된 사람-현무문의 변
3. 최고의 정치를 구현하여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
4. 정관의 치가 가능했던 배경
5. 이세민의 실수 : 고구려 정벌 - 그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않았다.
본문내용
1. 소릉(昭陵)에 묻힌 “정관의 치”를 보여준 황제
당태종 이세민이 묻혀 있는 곳이 소릉이다. 소릉은 행정구역상 섬서성 예천현 동북쪽 22㎞에 위치한 1180m 높이의 구 종산 꼭대기에 있다고 한다. 관중 평원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소릉은 아마도 이세민의 통치의 성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과제를 모고서로 작성하면서 참고하게 된 『정관의 치』(에버리치 홀딩스, 2007)를 읽으면서 알게 된 이세민의 인생은 드라마와 같이 파란만장했다.
본래 당 태종은 아버지 고조를 도와 당나라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 자리가 멀어지자 같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형 건성을 죽인다. 친 형제를 죽인 피의 숙청을 현무문의 변이라고 한다. 비록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고 황제자리에 올랐지만 정치에선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훗날 정관의 치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랬던 그도 마지막에는 여러 차례 고구려 원정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다시 대원정을 준비하다 고구려의 정벌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중 략>
5. 이세민의 실수 : 고구려 정벌 - 그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않았다.
644년 6월 당은 고구려의 요동 공격을 명령한 후 11월 수륙 양면으로 약 3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때 당군은 각종 공성용 기구를 총동원했다. 당 태종은 다음해 2월에 뤄양을 출발하여 직접 원정길에 올랐다. 요동에 진입한 이세적의 군대는 개모성을 함락시키고, 장량의 수군은 비사성을 함락시켰다. 태종이 직접 독려하는 가운데 645년 5월에는 요동성까지 함락시킨 뒤 백암성을 공격했다. 백암성이 6월에 함락되자 태종은 안시성이 연개소문의 정변 때도 안시성 성주(양만춘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가 복종하지 않아 공격을 받았으나, 항복시키지 못한 점을 들어 우회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보급로가 차단될 것을 염려한 이세적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시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중앙정부에서는 고연수, 고혜진의 지휘 아래 말갈군을 포함하여 15만 명의 군사를 내어 안시성 구원을 위해 출동시켰으나 당군의 작전에 말려들어 고전 끝에 항복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