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중국사 당 전기의 지배층-구귀족과 관료기반의 확대-
- 최초 등록일
- 2012.11.28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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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좌 중국사 당 전기의 지배층-구귀족과 관료기반의 확대-
목차
1.서 언
2. 수당귀족제론의 검토
3.귀족의 관료로의 유도
4.신진관료의 대두
5. 결어
본문내용
*과거우위정책의 구현
당초의 귀족은 조정의 관위를 계속 보지할 수 있는 가문만이 유지되었음.
씨족지·성씨록의 편찬으로 철저한 관위우위정책을 보여 산동귀족은 이러한 추세에 초연할 수 없어 장안,낙양등의 수도로 몰려들어 가업으로 전수된 우수한 학술로서 과거에 급제해 적극적으로 관계에 나가게 되었음.
-과거제
문벌 그 자체만으로도 득관 할수 없게 하여 귀족들의 정치면에서 이탈을 추진하였음.
이에 관위에 집착하지 않을 때 귀족으로서의 지위와 조락을 면할 수 없게 되었음.
문벌 그 자체로 득관시키지 않음으로써 문벌귀족제 타파에 큰 작용
당대의 과거 인재선발과목: 명경과, 수재과, 진사과
그러나 수재는 고종초에 이내 폐절하고 말아 명경과 진사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음.
태종은 천하치평과 함께 위진 이래 각 계보별로 발달되어 온 경학을 통일하고자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였음.→오경정의 집간되어 천하에 반포됨
그러나 귀족은 문학, 한인은 경학이라는 위진이래의 전통은 여전해 귀족은 문학에 집중 경학은 빈사의 업으로 되었고 경학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와 조교도 품급이 낮아 경시됨
무후가 대권을 장악하면서 문장 위주의 진사과를 우대하여 명경과는 급격히 쇠퇴→산동귀족들 대부분 진사로 출사하여 과거관료로서 그 성망을 드높임
무후 이후 진사과는 사인들의 관로로 촉망⇒재상 등의 고관이 진사출신이 아니면 안될 정도로 흥성
그러나 위진 이래의 귀족제를 기초로 한 율령관제와 관료제로 향하는 현실과의 괴리가 있었음.
수당의 과거제의 본 의도는 지방관서 하급관리의 보급원이었음. 이는 기존 관중집단의 관료귀족제적 질서를 유지하려는데 있었음.
그러나 당대에는 과거 출신자가 나갈 수 있는 지방하료직 광범위했음.
문음출신제도는 고종초까지는 성행하였으나 무후 등장 후 문음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관중집단의 대관이 많이 몰적 되어 문음 3코스 모두 쇠퇴해짐
참고 자료
민두기, 중국사시대구분론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7
지배선, 중세동북아사연구 서울 일조각 1986
中村圭爾,〈6조 귀족론〉,《일본의 중국사논쟁 -1945년 이후》, 1996, 신서원
김명희, 《중국 수․당사 연구》, 1998, 한국자료원
이계명 저,『수당관료제의 성립과 전개-산동귀족과 산동관료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출판부,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