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현대사] 대만현대사의 양민학살
- 최초 등록일
- 2002.11.18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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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들어가며
■ 대만의 역사
■ 남경대학살 (1937년)
■ 2·28 사건
■ 마 치 며
본문내용
대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만이 성립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를 이해해야 그 원인과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현대사적 배경이 많이 비슷한 나라가 대만이다. 일제 식민지를 겪고, 군사독재통치를 아래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대만에 대한 우리의 관심 극히 제한적이고 매우 적다. 특히 역사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만의 역사에서 현대사의 기점으로 삼는 것은 신해혁명이다. 신해혁명은 1911년 10월에 청조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고 1912년 1월에 공화정체제의 중화민국이 수립된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이 신해혁명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보는것은, 전제주의적 봉건체제인 청조를 타도하고 공화제 정부의 수립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혁명의 중심세력은 1905년 일본의 동경에서 손문의 주도아래 '민족, 민권, 민생'의 이른바 '삼민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중국동맹회'의 혁명파가 이끄는 군대이다. 중국동맹회는 입헌파와 이론투쟁을 벌이면서 청조타도의 무장투쟁을 화중, 화남의 각지에서 전개하였다.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청조는 1906년 입헌정치의 실시를 선언하고 1911년 5월에 책임내각을 조직한다. 그러나 중국 최초의 이 책임내각은 만주족 중심의 황(皇)족 내각이었는데, 간선철도의 국유화 정책을 내세우는 등 전반적인 지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