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민속마을
- 최초 등록일
- 2011.10.21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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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낙안읍성 민속마을
목차
목차 1. 내아
2. 낙민루
3. 객사, 객사문
4. 옥사
5. 문루
6. 해자
7. 빙허루
8. 사령청, 호방청
9. 사창, 군기고
본문내용
낙안읍성 공간구성
지정번호 : 사적 302호(1983년 6월 14일)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보호구역
성내 41,018평(135,597m²)
성밖 26,472평(85.950m²) 총 67,490평(221.488m²)
거주세대 : 85세대 229명
연혁.
1397년(태조 6) 김빈길(金贇吉, 김윤길)장군이
토성 쌓음
1626년(인조 4) 임경업군수 때 석성으로 중수
1426년(세종 9)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
다는 이설이 있다.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
개요
*
낙안읍성은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에 위치한 문화 유적지로 사적 제 302호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원의 마을과 이를 둘러 싼 성곽에 위치하며, 보호구역 면적은 성내 41,018평(135,597)과 성밖 50m까지의 26,472평을 포함하여 67,490평이다.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참고 자료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낙안읍성의 공간구성 변화에 관한 조사 연구 (길종원, 신웅주. 2010.01)
낙안읍성의 입지 (이기봉. 2008.01)
가로조건에 따른 전통주거지의 좌향 및 배치특성에 관한 연구
(김경완. 2003.12)
낙안읍성민속마을 연구 (이상구. 2003.01)
전통민속마을의 보존에 관한 연구 :낙안읍성의 이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임정환. 2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