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의 관직생활
- 최초 등록일
- 2011.03.21
- 최종 저작일
- 2009.06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사대부의 관직생활에 관련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관료의 입사
2. 관료의 생활
3. 관료의 수입
4. 부부관계
5. 유배문화
본문내용
<조선시대 사대부의 관직생활>
1. 관료의 입사
관료는 크게 3가지 입사방식은 과거와 음서, 유일의 천거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중 음서는 고려 때는 나이제한이 없어서 어린아이가 음서로 관직에 오르기도 했다. 조선 때는 나이 등의 조건을 둬서 음서가 대폭 축소되긴 했지만 그래도 황희 등은 음서를 통해서 관료가 되었다. 유일의 천거는 덕행과 학생이 뛰어나 추천을 받아 관료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나이가 많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대게 종9품의 능참봉으로 임명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출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지방에서 당파의 여론을 주재하는 산림의 경우 5품 전후로 등용이 되었는데 대표로 송시열 등을 꼽을 수 있다.
관료의 봉급은 녹봉과 과전, 두 가지가 주어진다. 두 개의 액수는 비슷하나 후에 과전이 없어지고, 전쟁이 나면서 더욱 관료의 봉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불법이라도 군역기피 등의 양반의 혜택이 있어서 관료의 직위를 선호하였다.
관료가 된 이들에게는 고신과 교지가 주어지는데, 고신은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이고, 교지는 임금이 벼슬아치에게 주던 인사에 관한 명령을 적어 본인에게 주는 문서이다.
청요직이란 대표적인 엘리트코스로 청직과 요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청직으로 대표되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삼사를 비롯하여 요직인 왕의 비서직 격의 승정원과 인사권을 관장하는 이조와 병조,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 등이 포함되고 이외 학문기관 등 또한 청요직으로 일컬어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