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도연맹 사건
- 최초 등록일
- 2010.11.22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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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크의 ‘사회계약설’ 시각에서 본 경북 봉화 국민보도연맹 사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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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들어가는 글
우리나라, 즉 남한은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격동기를 겪은 곳이다. 남에 나라에 식민지를 비롯해 편 노름, 전쟁 등 남한이 주체가 아닌 타국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 건물피해는 물론 전쟁으로 인해 난민, 실종자 등 인명에 관한 피해가 심했다. 보도연맹사건 또한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남북이 각각 갈라지면서 발생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보도연맹사건은 한국전쟁 전후 복잡한 정치현실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시각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보도연맹사건으로 인해 입게 된 피해는 다양한 시각에서도 공통된 결과를 갖고 있었다. 이때 학살된 인명피해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수십만 명이 사살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명이 학살된 시점에서 국가는 어떤 상황이었으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유와 당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1939년 9월, 반(反)파시즘적인 영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연합국인 미·영·소가 승전국이 되자 세계정세는 이 3개의 열강에 의해 흘러가게 되었다. 한국을 지배하던 일본도 패전국이 되면서 고스란히 한국의 패권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후였다. 승전국인 미국, 소련은 서로 반대적인 성향의 진영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자유진영과 소련의 공산진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열강의 실권 다툼은 일본이 패권을 포기한 한국에 다시금 악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845년 8월 15일,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하였다. 일본의 무장해제와 독점하던 권력도 철수 하였다. 하지만 해방한 기쁨도 잠시,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걸려 있던 일장기나 내려가고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가 올라갔다. 이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닌 잠재적인 해방을 말하고, 또한 다른 나라의 식민지의 성격을 지닌 미국의 속국이 된 것으로 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남한은 미국의 지배에서, 북한은 소련의 지배에서 운용되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각각의 두 진영을 자신의 체제로 포섭하기 위해 한명의 인물을 내세워 지배하려 한다. 이에 대표적인 인물이 남한에는 이승만과 북한에는 김일성이다. 이들은 각각 미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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