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민란
- 최초 등록일
- 2010.09.28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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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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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19세기 말 조선의 사회 상황
①생산력 발달에 따른 농민층분해와 계급대립
②조세수탈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③사대부 토호들의 불법적인 향촌지배
3. 전라도 민란 : 함평농민항쟁을 중심으로
① 전라도 지역 농민항쟁의 요구조건
② 함평농민항쟁의 전개과정
③ 조선왕조의 대응
4. 결론
※ 참고문헌 ※
본문내용
2. 19세기 말 조선의 사회 상황 『동학 농민 봉기』 - 한우근, 『조선후기 사회사 연구』 - 오영교, 『대학생을 위한 한국사 산책』 - 강대민・한규철・김인호
① 생산력 발달에 따른 농민층분해와 계급대립
19세기 사회경제구조의 변동은 끊임없는 농법개량과 농업생산력의 발달,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의해 야기되고 있었다. 특히 선진적 미작 지대이고 유통경제가 크게 발달하였던 삼남지역에서 농민층분해는 급속히 촉진되었다.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양극분해현상은 토지소유의 분화를 심화시켰다.
농법의 발달과 노동력의 상품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를 활용한 지주, 부민들의 경영확대가 나타났다. 결국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 향촌내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소농경영의 영세화와 자영농민층의 몰락현상이 나타났다.
극히 적은양의 농업소득으로 인해 과도한 지대와 부세를 지불하고 남은 부분으로 가계의 생활자금 및 재생산기금을 마련해야 했다. 빈농들은 품을 팔거나 땔감 판매와 같은 농업 외소득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봉건지주와 소빈농, 작인 사이에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계급대립은 심화되어 고율의 지대수취에 대항한 항조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농민층 내부에서도 부농과 빈농 사이의 대립이 야기되었는데 부농층의 경영확대, 대지주의 차지(借地)에 대한 경쟁에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봉건적 생산체제 내의 갈등인 작인 빈농과 지주 사이의 계급대립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었다.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기본적이고 체제적인 것이었으나 그 외에 상품화폐경제의 갈등을 반영한 수탈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로서 유지되는 신분제나 봉건권력과 같은 경제외적 강제에 기초하여 착취관계가 형성되었으나, 이 관계는 상품화폐관계를 매개로 더욱 심화되는 한편 새로운 착취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향촌에서 지주, 부민, 상인들은 고리대의 수탈과 유통기구의 장악을 전제로 지역 간, 계절 간 상품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수탈을 행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