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자료집
- 최초 등록일
- 2010.09.09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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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평창 자료집
목차
1. 상원사(上院寺)
2. 월정사(月精寺)
3. 오대산 사고(史庫)
4. 이효석 생가
본문내용
1. 상원사(上院寺)
○ 위치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 조성시대 : 통일신라시대(성덕왕 23, 724년)
개요
강원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의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이 지었다는 설과 705년(성덕왕4)에 보천과 효명 두 왕자가 창건하여 진여원이라 명명하였다가 후에 상원사로 개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종각(鐘閣)을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은 8․15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상원사의 창건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에 들어간 두 왕자 가운데 형인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터 아래에 푸른 연꽃이 핀 것으로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두 형제는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고 오대(五臺)에 나아가 항상 예배를 드렸으며, 날마다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 마침 신라의 왕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오대산으로 와서 두 왕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보천은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을 모시고 서울에 돌아와서 왕위에 추대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705년 3월 8일에 진여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을 행하게 하였다. 또 결사의 이름은 화엄사라고 하였고 복전 7원을 두게 하였으며, 그 경비는 가까운 주현에서 주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상원사
고려시대의 상원사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사를 거쳤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