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최초 등록일
- 2010.07.21
- 최종 저작일
- 2010.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박태원의 사소설로서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대한 분석
목차
들어가며
구보의 지리적 행보
관조적 시선의 적극성
고현학 그 이상의 것
마치며
참고자료
본문내용
들어가며
1930년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한 박태원은 이태준,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의 대표적 작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모더니즘 작가답게 형식과 문장의 기교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예로 박태원은 그의 작품들에서 한자의 남용, 광고, 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쉼표 사용 시도, 중간 제목의 강조 등의 형태로 소위 ‘박태원만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였다. 기교를 중시하는 그의 경향에 따라 그의 작품경향은 자연스럽게 ‘이데’의 배제로 나타났지만, 한편으론 이효석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에도 기울지도 않아 이른바 박태원의 모더니즘적 세계는 그 갈래를 달리한다. 그가 내세우는 기교주의는 그 명칭에서 풍기는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이데’가 없이 수사적인 화려한 표현만으로 시선을 끌어보려는 속빈 강정의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기교에 대한 비평인 ‘표현, 묘사, 기교’를 살펴볼 때, 박태원에게 기교란 소설의 형상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수단의 의미가 아니라, 소설 창작의 목적 자체로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기교의 실험에 대한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를 사소설을 들 수 있다. 그의 ‘표현, 묘사, 기교’ 비평에 보면 제 11장에 사소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박태원은 작가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못하는 문단을 개탄하면서, 비록 범위는 좁지만 작가의 의식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사소설의 가치를 역설하였다. 그의 사소설에 대한 인정과 칭찬은 그 스스로의 사소설 창작으로서 나타나는데, 그 사소설 작품중 대표적 단편소설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식민지 시기, 일제에게 자유로운 작가의식을 박탈당하던 때에, 작가의식의 온전한 투영의 방법을 고민하던 박태원의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본 글에서는 박태원이 그의 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그의 눈으로 본 그의 경성의 모습을 어떠한 형식과 방법으로서 구현해 내는지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방민호,「1930년대 경성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문학연구의 재인식』,(예옥, 2010), 183p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지학사, 1990), 26p
김흥식, ,「박태원의 소설과 고현학」,『박태원 문학연구의 재인식』 (예옥사, 2010), 18p
박태원, 「옹노만어」,『조선일보』193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