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미난 시기의 사대부사회와 후한왕조
- 최초 등록일
- 2010.07.15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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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적미난 시기의 사대부사회와 후한왕조 논문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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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 대의 호족은 무제기 이후 급성장하고 있다. 한 대의 호족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데 탁류와 청류 사대부로 구분한다. 탁류 사대부는 대토지 소유자로서 향곡의 백성을 수탈하는 부정적인 면모를 보인 반면, 청류사대부는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지니고 그들이 배운 지식을 가지고 실천을 행하는 긍정적 면모를 보인다. 이들에 대한 지칭을 한서와 후한서에서는 보편적으로 사대부라 불렀다. 사대부는 학적 소양을 갖추고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대게 호족이 사대부라 칭하기도 한다.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고 ‘신’을 세우면서 사대부들은 왕망정권을 옹호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누어져있었다. 왕망의 신이 지나친 국가 통제적 정책을 실시하면서 사회 전반의 모든 세력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호족들은 토지에 대한 규제 정책에 반감을 가졌고, 대상인들은 상공업 규제정책에 불만을 가졌으며, 농민들은 새로운 제도가 오히려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왕망의 실정과 더불어서 연이은 재해가 일어나게 되고 이윽고 왕망이 죽을 무렵 시작된 전국 각지에서의 농민 봉기가 발생하게 되고, 대표적으로 ‘적미의 난’이 발생하게 된다. 전후한 교체기의 적미난 시기(후17-40)는 성장해온 사대부사회가 전란의 곤경을 헤쳐가면서 실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시기이다. 이 시기 반란 세력은 적미군과 녹림군으로 나눈다. 적미군은 주로 오랜 기근으로 지친 지금의 산동 동부와 강소북부에는 농민들과 부랑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번숭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반란 집단이다.
참고 자료
박건주, 적미난 시기의 사대부사회와 후한왕조, 중국고중세사연구, 제23집, 2010.2, pp. 81~112(32 p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