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의 가계와 유지론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0.06.13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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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중세사 들을 때 중간대신 썼던 레포트입니다.
서울대 나오신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읽고 썼던 리포트입니다.
당시 에이쁠 나왔던 리포트예요
목차
Ⅰ. 논문 요약
Ⅱ. ‘혜강’과 당시 ‘위진사대부’에 대한 이해
Ⅲ. 의문점과 고찰
Ⅳ. 현대사회에서 ‘죽림칠현’의 의미
Ⅴ. 레포트를 마치며
본문내용
Ⅱ. ‘혜강’과 당시 ‘위진사대부’에 대한 이해
당시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3세기 중반, 조씨의 위에서 사마씨의 진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격동의 전환기였다. 이 위험한 시대에 죽림칠현은, 새로이 등장한 정권의 반대파를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된 사마씨의 첩보망을 피하기위해 노장사상의 `무위자연` 이념에 기반한 독특한 생활방식을 창조했다. 그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를 자처하여 그 생을 마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중 혜강만이 사마씨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로 보아 혜강은 상당한 절개를 지닌 듯하다.
Ⅲ. 의문점과 고찰
1) 혜강의 『여산거원절교서』은 ‘은인자중’을 뜻하는가?
혜강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상당한 절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 성격 역시 급한 것 같다. 혜강이 생각하였을 때 산도가 사마소의 심복이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서운한 마음에 산도에 대한 절교를 선언한 것이지만, 이는 대내외적으로 사마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혜강은 자신의 안위에 심각한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다. 이는 ‘은인자중’한 것이라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산도는 비록 죽림칠현에서 나와 정권에 가담하기는 하였지만, 죽림에서의 평소 죽림에서 혜강의 능력을 높이 샀기에 그를 추천한 것이며, 또 이는 어떤면에서는 사마소로부터 혜강을 보호하려는 일종의 보호술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