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과 낙동강 유역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0.06.06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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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남지역과 낙동강 유역의 관계
목차
서론
본론
1.낙동강 유역의 발원지
2.낙동강 유역의 문화
(1)낙동강 유역의 생활
➀인구
➁산업현황
3.낙동강 유역의 지형
4.낙동강 유역의 식생현황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낙동강(洛東江)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편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낙동강의 첫 글자인 ‘낙(洛)’은 오늘날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경상북도 지명 유래집에는 ‘상주의 옛이름은 낙양(洛陽)이고, 낙양의 동쪽은 낙동, 서쪽은 낙서, 남쪽은 낙평, 북쪽은 낙원(처음엔 나원으로 불리다가 오늘날 낙상면이 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낙양’이라는 곳이 ‘낙’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낙양은 상주시가지의 서쪽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사직단터’라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사직단터는 조선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지신(땅의 신)과 곡신(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자리이다.
학자들은 낙양에 있는 이 비석이 바로 ‘낙’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한다
본론
1.낙동강 유역의 발원지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 삼척도호부편에 `황지(黃地)` 서쪽 1백10리에 있다. 그 물이 남쪽으로 30여 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가는데 천천(穿川)이라 한다. 곧 경상도 낙동강의 원류이다.
관에서 제전(祭典)을 두어서 날씨가 가물면 기우(祈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