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제2차세계대전의 시작
- 최초 등록일
- 2010.05.11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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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7년 7월 7일, 일본은 사전의 선전포고없이 무력으로 중국을 도발하게 됩니다. 일본은 이미 1936년 만주지역을 점탈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시시때때로 중국을 먹을 생각을 하던 중 중국의 제 2차 국공합작이 가까워지자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무력도발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중일전쟁, 지나사변, 7.7사변 중국 항일 전쟁입니다. 대학원 수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프리젠테이션으로 많은 참고자료를 이용해 교수님으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목차
중일전쟁
중일전쟁의배경
중일전쟁의 경과
새로운 루트, 원장루트와 레도루트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확대
종전 후의 중국
중일전쟁에 대한 새로운 역사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교과서 비교
읽을거리
본문내용
※ 중일전쟁 경과
1. 중공중앙과 중화소비에트정부의 8.1선언(1935)
- 내전의 정지와 항일구국을 위한 단결을 호소. 항일연합군의 창설에 대한 용의를 장개석에게 전달
- 북경, 항주, 광주, 천진, 상해 등지에서 학생운동의 확산, 각계별로 항일구국회 결성
2. 서안사건(西安事件 : 시안사건 1936.12.12)
-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섬서성 서안에 있던 장개석을 장학량이 체포, 감금
- 서안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 항일전선에 기반
3. 노구교사건(盧溝橋事件 : 루꺼우차오 사건1937.7.7), 7.7사변
- 일본은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킴
- 일본은 국공의 합작이 목전에 이르자 사전에 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제압하고자.
- 파죽지세의 일본군 : 1937.7 말경 북경, 천진 등 화북의 거의 전부를 점령.
1937.8 상해, 항주만에 군대를 상륙,
1937.12 남경을 점령 ‘남경대학살’
1938.5 서주(徐州)를 점령, 화북과 화남을 관통하게.
1938.10 광동을 점령, 전면전쟁으로 확대
- 일본군 = 근대화된 산업력에 바탕을 둔 30만 여명 이상의 정규군, 일본군 장교에 의해 지휘되는 만주국출신 만주인 및 몽골인 부대 15만 여명 이상, 약 200만 명의 예비군) 당시 세계 3위의 막강한 해군력과 육군 및 해군 항공대가 이를 지원
- 중국 국민당 = 수적으로 약 400만 여명 이상으로 추산, 그러나 현대식 무장을 제대로 갖춘 부대는 약 10만 여명 이상인 장개석의 직속부대뿐. 나머지는 지방 군벌들 세력을 주축, 이들 대부분은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변변한 장비조차 갖추지도 못했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