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필
- 최초 등록일
- 2010.03.22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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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산교대 오인택 교수님 `역사의 이해` 시간에 레포트로 낸 자료입니다.
조선시대 인물인 김굉필에 대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역사 소설 만들기`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듯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그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여
김굉필이 쓴 일기 형식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근거가 등장할 시에는 출처를 표시하였습니다.
ex) #2. 연산 12권, 2년(1496 병진 / 명 홍치(弘治) 9년) 1월 5일(갑신) 5번째기사
< 권경희·김굉필·이극균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권경희(權景禧)를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김굉필(金宏弼)을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로 삼았다.
이에 앞서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굉필(宏弼)을 유일(遺逸)로 천거하니, 명해서 참봉(參奉)을 제수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참봉의 직품이 낮다 하여 발탁해서 윗 벼슬을 제수하였다.
이 외에도 모든 자료 인용 시에는 각주로 자료출처를 명시하였습니다.
본문 내용은 약 7,300여자입니다.
목차
☆ 선정 인물
· 1472년 10월 17일 날씨 구름이 조금 끼고 선선함
· 1474년 5월 어느 날
· 1475년 3월 9일, 아직은 많이 쌀쌀함
· 1480년 3월 4일 날씨 맑음
본문내용
· 1474년 5월 어느 날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점필재(김종직)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배우기를 청하니, 선생님께서는 `진실로 학문에 뜻을 두려면 마땅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광풍제월도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소학을 먼저 가르치겠다고 하셨다.
(※김굉필은 어린 시절 한 마디로 골목대장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6~7세 때 성품이 매우 활발하여 시전에 다니며 장난칠 적에 뭇 아이들이 두려워하여 피하였다고 하며, 무례하게 조롱하고 거만스러운 자를 보면 문득 채찍으로 그들이 파는 고기나 두부 등을 갈겨서,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선생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각기 그 물건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그가 본격적인 학문수업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나이 21세가 되던 1474년(성종 5) 늦은 봄이었다. 왜 이렇게 뒤늦게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중략)
· 1496년 1월 5일, 날씨 흐림
관직은 계속 오르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쩐지 주변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임금께서는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 않고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고, 실록 편찬에까지 관여하곤 하신다. 요즘은 그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2. 연산 12권, 2년(1496 병진 / 명 홍치(弘治) 9년) 1월 5일(갑신) 5번째기사
< 권경희·김굉필·이극균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권경희(權景禧)를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김굉필(金宏弼)을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로 삼았다.
이에 앞서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굉필(宏弼)을 유일(遺逸)로 천거하니, 명해서 참봉(參奉)을 제수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참봉의 직품이 낮다 하여 발탁해서 윗 벼슬을 제수하였다.
참고 자료
① <조선왕조실록>
② 국회도서관 기호 907 ㅈ367ㄱ - 김굉필의 교육활동과 교육사상/조계민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