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베 콜롯세움 판테온
- 최초 등록일
- 2010.02.18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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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고전의 이해 과제로
카타콤베 콜롯세움 판테온 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카타콤베
▶ 카타콤베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
▶ 카타콤베의 형태
▶ 카타콤베의 소개
2. 콜로세움
3. 판테온
본문내용
1. 카타콤베
카타콤베라는 말은 옛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섞여진 `카타쿰바스`(구덩이 또는 동굴의 옆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그들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적인 동굴도 거의 다 무덤으로 차 버리자., 그때부터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1세기 중엽부터였다고 한다.
로마의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네크로폴리` 즉 죽은 자들의 장소라고 불렀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무덤을 `체메테리움`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잠자고 있는 중 또는 쉬고 있다는 뜻이다. 이 체메테리움(현재는 이탈리아어로 치미테로라고 부름)이라는 말은 초기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지어 낸 말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무덤이 이교도들이 사용했던 `네크로폴리`라고 불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그 필요성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종교의 자유를 얻은 것은 313년이다. 그 후 교황 성 다마수스(366-384)가 아피아 가도 주변에 있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무덤을 포함해서 그 일대의 지하 공동묘지를 재정비하고, 이곳을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지하 공동묘지라고 명명하면서 처음으로 `카타쿰바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 후 중세기 때부터는 초 세기 교회 공동체의 지하 공동묘지(주로 1세기에서 4세기 초까지) 전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카타콤베라고 널리 사용하면서 현재까지 내려온다.
카타콤베갱도작업
▶ 카타콤베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
네로 시대를 비롯하여 기독교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다. 첫 박해를 전후하여 초기의 선교활동은 로마 근교에 살던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계층 사람들에게 주로 많이 행해졌으며, 그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테베레 강 어귀와 아피아 가도 주변이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신자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자연히 신자들은 주위의 눈을 피해 로마의 성밖에서 은밀히 모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삐아 가도 주변에 많이 있던 지하 무덤 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