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을 이용한 조선시대 문자생활의 실상
- 최초 등록일
- 2010.01.08
- 최종 저작일
- 2009.11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훈민정음을 이용한 조선시대 문자생활의 실상 에 대해.
(향유자와 구체적 사례 포함- 4000자 이내)
영남대학교 인터넷강의(인강) 서종학교수님의 `문자생활의 역사`레포트입니다.
제목까지 총 4066자 정도이구요.
서적 및 인터넷검색으로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인강 출석 하나 날리고 A떴습니다.)
목차
1. 15세기의 문자 생활
1.1 운서와 문자 생활
1.2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과 문자 생활
1.3 불경류의 언해와 문자 생활
2. 16세기의 문자 생활
3. 조선 후기(17,18,19세기)의 문자 생활
본문내용
1. 15세기의 문자 생활
1.1 운서와 문자 생활
훈민정음의 창제는 그 전과 다른 새로운 운서의 편찬을 가능하게 했다. 한자음의 주음 방식이 한자 두 자의 양자 표음법식 반절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기능을 신문자인 훈민정음이 담당하고 훈민정음은 운서의 한자음을 다는 발음 기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자와 비교해 볼 때 표음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이 그 역할을 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2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과 문자 생활
조선 초기에 조선 왕조의 정당성 및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이데올로기)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유교 가치관에 대한 전파를 위해 국가에서는 악장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게 되었고, 그 첫 작업은 「용비어천가」로 귀결된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왕조 건국과 관련하여 태조의 고조인 목조부터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에서 이룬 업적에 대한 내용을 노래한 악장으로서 조선 건국 및 왕조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문자 생활은 조선 왕조의 정당성 홍보에만 머물지 않는다. 「삼강행실도」는 조선이 추구하는 유교적 이념을 예컨대 효자, 충신, 열녀들의 뛰어난 행동의 예를 바탕으로 전하고자 엮은 책이다. 그러나 한문으로 된 이 문헌을 일반 백성이 읽고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1481년(성종 12년)에 한문본을 언해한 언해본 「삼강행실도」가 출간되었다.
1.3 불경류의 언해와 문자 생활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 왕조이었으나, 조선 초기는 많은 불경 등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당시 불경 언해와 관련해서 우선 「석보상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세종이 소현왕후의 죽음을 슬퍼하여 엮은 석가의 일대기로서 중국의 한문으로 된 것을 뽑아 엮은 것이지만, 직역이 아니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다시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형식의 성격 상 악장이긴 하지만, 내용상 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월인천강지곡」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밖에도 1461년(세조 7년)에 간경도감이 설치되어 「능엄경언해」를 비롯한 많은 불경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훈민정음 창제 후 성종대까지 약 50년간 40여종 200여 권의 번역서가 출간되었는데, 거의 한문의 번역이었고 15세기 문자 생활의 중요한 측면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문자를 중심으로 한 15세기의 문자 생활이라는 것이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전개된 문자 생활은 아니었다. 신문자가 만들어진 후, 그 사용의 주체는 주로 왕실 및 귀족이었고 백성들은 그러한 문자 생활의 부분적 수혜자였으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15세기의 문자 생활은 위로부터의 신문자 보급 운동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로 가면서 문자 생활의 면모는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