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연대표
- 최초 등록일
- 2009.11.22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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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항기 당시 연대표 및 주요사건기록.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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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란/병란 이 두 개의 난은 작은 차이를 가진다.
민란: 목표는 주로 수령이나 지방토호세력/ 발생지역은 주로 군ㆍ현단위의 좁은 범위에서 일회적으로 발생/ 그리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병란: 반면 병란은 민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그 병란 내부에는 이를 조직해 나가는 조직가가 있어 세력을 규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생이 지속적이다.
1 오페르트 도굴사건 :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는 병인양요 후, 계속적인 통상교섭 실패에 대하여 대원군에게 앙심을 품고, 이에 흥정을 위해 그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 려다 미수에 그치게 된다. 이는 이후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1 경복궁 중건 : 고종 즉위 후 , 섭정을 하던 대원군은 조선 말기 이래로 외척(外戚)의 세도에 밀려 추락된 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경복궁의 재건을 계획한다. 그 러나, 재정부족에 맞닥뜨려 오히려, 그 피해가 백성들에게 돌아가고, 이는 결국 백성과 양반 모두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1 병인양요(丙寅洋擾) : 1866년 병인박해(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을 이류로 프랑스 함대의 침입, 이후 조선군은 이를 막아내나,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대원군은 이 승리 를 위시하여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더더욱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1 고종 - 흥선대원군의 집권 : 고종의 집권으로 우선 형식적으로 세도정치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흥선 대원군의 첫 집권(1863~1873)을 하게 된다. 그는 세도정치 타파, 비변 사 격하․폐지, 경복궁 중건, 법전 정비(대전회통, 육전조례), 서원의 정리, 호포법 실시, 사창제 개혁, 통상 수교 거부 정책등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며,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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