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사A+] 몽고전쟁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및 토지개혁 요약
- 최초 등록일
- 2009.09.27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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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사A+] 몽고전쟁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및 토지개혁 요약
목차
1. 고려후기 농장의 발달, 토지제도의 모순
1) 원 간섭기 농장의 확대과정
2) 농장의 유형과 경영형태
3) 농장 확대의 원인
2. 신진사대부들의 토지 개혁
1) 토지제도의 모순에 대한 고려정부의 대책
2) 성리학의 도입과 사대부층의 진출
3) 전제개혁에 대한 논의
4) 과전법의 성립
본문내용
1. 고려후기 농장의 발달, 토지제도의 모순
1) 원 간섭기 농장의 확대과정
* 토지겸병제도(무신정권기, 12세기초 부터)
- 초기, 무신집권자, 관인, 토호, 승려에 의해 진행, 이후 관인, 왕실, 국가 권력기관 등이 주체, 점차 본격화.
- 무신집권기 전후의 토지제도: 당시 몽고의 침입, 삼별초의 난, 일본 원정 -> 인구 감소, 토지 황폐화 -> 국가 재정 파탄. => 왕실, 국가 기관도 토지 겸병의 대열에 가담. (원 간섭기, 충렬왕 때부터 시작.)
* 충렬왕 시기의 토지겸병
- 국가 내정의 고갈 -> ‘과렴’을 행함.
- ‘내방고’ 설치
- 권농사를 각 도에 파견 -> 공/사 양전을 택하여, 백성에게 경작, 공부를 면제.
- 직접 토지 겸병과 인구 집중에 왕이 앞장서게 됨.
* 사패전: 특정 공신에게 임의로 토지를 사여 할 때, 이 때 제공되는 토지.
-> 이후 유민을 정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 실제로는 일반 농민층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음. (긴 전쟁으로 노동력/도구 상실) -> 호부가와 권세가에 의해 주로 독점.
- 왕의 간섭과 전쟁에 의한 왕실의 정치적 불안 -> 왕권유지를 위해 권세가들에 사패 지급.
-> 사패전 지급의 결과: 토지 제도의 문란, 사회 문제 유발.
* 토지제도의 모손을 위한 정부의 노력.
- 면세와 피역: 사패의 취소, 조세의 징수, 부역의 부과.
- 타인의 토지 겸병: 본 소유주에 환급 조치.
- 정한제 실시: 취급 결수를 제한하는 제도.
-> 권세가들이 대부분의 사패전의 취득자이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함.
- 공민왕대 이후가 되어도 토지문제는 극복하지 못함.
2) 농장의 유형과 경영형태
➀ 수조지 집적형 농장
* 형성요인: 개간, 기진, 탈점, 매득, 장리, 사패, 투탁. 이 중 토지의 탈점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음.
- 토지의 탈점: 12C 초 시작, 무신집권기 본격화, 원 간섭기에 가속.
- 전쟁 직후 황폐화 된 토지로 인해 과전/녹봉의 지급 불가 + 원나라의 내정간섭과 맞물려 왕권이 불안정 -> 따라서 국왕은 사패 지급을 통해 왕권 유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