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1.09.30
- 최종 저작일
- 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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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이상재의 생애
2.민립대학 설립운동
3.날카로운 풍자
본문내용
-정치가・사회운동가. 본관 한산(韓山). 자 계호(季皓). 호 월남(月南)
이상재(1850 ~ 1927)는 1850년(철종1) 충청남도 서천에서 이희택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7년(고종4) 과거 시험을 보았으나, 당시는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팔던 때라 낙방하고 말았다. 이에 실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상재는 친척의 소개로 박정양의 집에 들어가 1880년까지 박정양의 비서로 일했다.
1881년 이상재는 신사 유람단으로 일본에 가는 박정양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일본의 새로운 문물과 발전된 사회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이상재는 함께 갔던 홍영식, 김옥균, 등과 깊이 사귀면서 개화 사상에 눈뜨기 시작했다. 1884년 홍영식의 추천으로 오늘날 우체국에 해당하는 우정국 주사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 김옥균, 홍영식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1887년 2등 서기관이 된 이상재는 초대 주미공사로 가는 박정양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등 서시관으로 근무 하였다. 이때 청나라가 우리 나라와 미국이 외교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자, 이상재는 청나라 공사와 담판을 벌여 미국과의 수교를 성사시키고 귀국하였다. 그 뒤 고향에서 지내던 이상재는 1892년 다시 관직에 나가 학무 국장을 지냈다. 그리고 사범 학교, 중학교, 소학교, 외국어 학교를 세워, 한때 외국어 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