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初, 明으로의 倭寇侵寇 정보 제공에 대한 朝鮮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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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ㆍ수록지정보 : 동국사학 / 54권
ㆍ저자명 : 윤성익
ㆍ저자명 : 윤성익
목차
Ⅰ. 서론Ⅱ. 倭寇史에서 1419년의 의미
Ⅲ. 1419년 倭寇 侵寇정보의 전달과정
Ⅳ. 倭寇 정보 제공에 대한 조선의 입장
Ⅴ. 결론
한국어 초록
1419년(朝鮮世宗元?明永樂17)은 朝鮮과 明에서의 倭寇문제 및 조선?일본(對馬島) 관계에서도 큰 획기를 맞은 해였다. 그 직접 계기가 된 사건은 明에서의 望海?대첩과 조선에 의한 對馬島정벌이었다.그런데 ⌈대마도정벌⌋ 의 원인 및 목적에 관해서 기존의 연구 대부분은 왜구근거지의 토벌에 의한 왜구소멸을 들어왔지만, 정벌이 행해졌던 무렵 조선에서의 왜구상황, 조선과 명의 관계, 그리고 정벌과정 중에 나타난 조선측의 태도 등을 생각해보면, ⌈대마도정벌⌋ 의 원인과 목적을 단순히 왜구 소멸이나 왜구문제해결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에 대해 주변국과의 관계와 조선 초 대외정책의 목표 등에 주의하면서 대마도정벌의 원인 및 목적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이들 연구에서는 對馬島정벌을 조선과 왜구의 관계로만 파악하지 않고 명과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살펴보고, 정벌의 원인을 明의 조선에 대한 압력과 征倭論?北伐論에서 찾고 있다. 필자 역시 이런 설명에는 크게 공감하는 바가 많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서 중요한 논리적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조선으로부터 명에 전달된 ‘倭寇의 침구 정보’이다. 조선이 ‘倭寇정보’를 明에 전하는 과정을 통해 정보를 전한 조선의 의도, 나아가 對馬島정벌의 의도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종래 연구에 따르면 1419년 이전에는 朝鮮이 明으로 倭寇가 침구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명으로 전하지 않았지만, 1419년초를 기점으로 종래의 방침을 바꾸어 朝鮮이 明으로의 정보 제공에 적극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적극성이야말로 대마도 정벌의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살펴본 것처럼 1419년을 기점으로 조선이 정보 제공에 적극성을 가졌다고 볼 근거는 미약하다. 朝鮮이 明으로 전했던 정보가 望海?대첩에 도움이 되었다고 明과 朝鮮에서 인식하고 있었지만, 조선이명으로 전한 정보가 어떤 명확한 의지를 통해 명으로 전해지고 이것이 望海?대첩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朝鮮이 이때 明으로 왜구와 관련된 정보를 전한 것은 통상적인 ‘被擄人’의 처리문제와 연관된 부가적인 행위였다고 판단된다.
또한 對馬島정벌이 이루어지기 직전, 조선은 倭寇로부터 매우 구체적인 明으로의 침구 정보를 입수하고서도 이에 대해 정보전달과 관련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明에의 ‘왜구 정보 제공’에 대한 조선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즉 조선의 입장은 이전과 비교해 특별히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1419년 이후에도 朝鮮은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조선은 이전시기처럼 明에 대해 필요이상의 정보제공은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단 것이다.
이를 被虜人의 문제와도 함께 생각해보면 조선은 조선 내부의 사정에 따라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혹은 유리한 정도만의 정보를 명 측에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조선의 태도는 조선 초의 對明관계 및 ‘對明事大’의 실제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 초록
1419年(朝鮮世宗元?明永樂17)は朝鮮と明における倭寇問題?び、朝鮮と日本(?馬)との?係においても大きな?期を迎た年である。その直
接な切っ掛けになった事件は明においての⌈望海?大捷⌋と朝鮮による⌈?
馬征伐(己亥東征??永の外寇)⌋ であった。
⌈?馬征伐⌋の原因及び目的に?して?存?究の多くは倭寇根?地の討
伐による倭寇消滅を?げて?たが、征伐が行われた?時の朝鮮での倭寇
?況、朝鮮と明との?係、征伐進行中に現れる朝鮮側の態度などを考え
ると朝鮮の⌈?馬征伐⌋の原因と目的を倭寇消滅とか倭寇問題解決のよう
な?純な?明だけでは理解できないどころが多い。これに?し、朝鮮と
周??との?係と朝鮮初?外政策の目標などに注意しながら⌈?馬征伐⌋
の原因と目的を解明しようとする試みもある。これらの?究では?馬征
伐の原因を明から朝鮮への?力と征倭論?北伐論から探し求めている。
自分もこういう考え方は正しいと思う。
どころが、その論?で重要な論理的根?として提示されるのが朝鮮か
ら明へ?わった⌈倭寇の侵寇に?する情報⌋である。朝鮮が⌈倭寇情報⌋を
明へ?える過程を通じて情報を提供した朝鮮の思惑、進んで⌈?馬征伐⌋
の意?を明かしている。以前の?究での?明によると1419年の以前まで
朝鮮は明へ倭寇が侵寇するという情報を入手した場合、その情報を明へ
?えなかったが、1419年初から突然方針を?え、朝鮮が明への情報提供
に積極性を持つようになったという。そしてこの積極性こそ⌈?馬征伐⌋
の?の目的を語ってくれるものだと主張する。
しかし、本稿で明かした所、1419年を?機として朝鮮が情報提供で積
極性を持つようになったとみるべき根?は微弱である。朝鮮が明へ?え
た情報が⌈望海?大捷⌋の助けになったと明と朝鮮ともに認識してはいた
が、朝鮮が明へ?えた情報はある明確な意思の基で明へ渡され、それが
望海?大捷という結果を産み出したとは言難い。この時、朝鮮が明へ⌈
倭寇情報⌋を?えたのは通常の‘被擄人’?理問題と?連した付加的行?で
あったと判?される。
また、⌈?馬征伐⌋の?行の寸前、朝鮮は朝鮮の西海岸を侵入した倭寇
から極めて具?的な明への侵寇情報を入手したが、これに?して朝鮮は
何の行動もしなかった。こういう?況はなによりも明への⌈倭寇情報⌋提
供にたいしての朝鮮の立場をよく表してくれる。すなわち、朝鮮の態度
は以前と比べ別に?化はなかったのである。ちなみに1419年以後も朝鮮
はこういう態度を堅持していった。以前の時期と同じく明へには必要以
上の情報提供は敢えてしようとはしなかった。
それを被虜人の問題と?せて考えると朝鮮は朝鮮の?部都合に?って
自分達に必要な、或は有利な程だけの情報を明側に?えていたのであ
る。このような朝鮮の態度は朝鮮初の?明?係と⌈對明事大⌋の?態が反
映されたものだと言えるだろう。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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