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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 백제계 이주민의 일본 오우미지역 정착과 활동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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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12.01.09
최종 저작일
2010.02
61페이지/파일확장자 어도비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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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7세기 백제계 이주민의 일본 오우미지역 정착과 활동"에 대한 내용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이주민의 발생과 일본열도로의 이주과정
1. 이주의 개념과 발생시점
2. 5~6세기 백제계 이주민의 畿內地域 이주와 정착

Ⅲ. 近江地域의 백제계 이주민과 관련된 유적
1. 벽주건물
1) 일본열도의 벽주건물
2) 近江地域의 벽주건물
2. 횡혈식 석실분
1) 畿內地域의 횡혈식 석실분
2) 近江地域의 횡혈식 석실분
3. 사원

Ⅳ. 백제계 이주민의 近江地域 정착과 활동
1. 7세기 백제계 이주민의 近江地域 이주
2. 백제 멸망 이후 近江地域에서의 활동과 그 의미
1) 天智期 백제계 이주민의 활동
2) 天武ㆍ持統期 백제계 이주민의 활동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본문내용

이 연구는 고대 한일관계사에서 백제계 이주민의 일본열도 이주와 그 의미를 통해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문헌자료와 고고자료를 아울러 연구를 진행하였다. 기존 연구경향은 일본에서도 畿內 中心部에 치중했기 때문에, 지방에 대한 연구성과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이 가운데 6~7세기에 백제계 이주민이 집중적으로 이주하였던 近江地域에 대한 다양한 검토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의 성과를 각 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Ⅱ장에서는 그 동안 일본열도로 옮겨가서 정주한 사람들에 대한 용어인 ‘渡來’, ‘歸化’, ‘渡倭’ 대신 ‘이주’의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주집단의 성격을 한반도에서의 소속 정치체로 구분하여 ‘백제계 이주민’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백제계 이주민은 일본 畿內 中心部에 먼저 정착하고 대체로 雄略期 전승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러 계통의 이주민들을 秦氏ㆍ倭漢氏 등의 집단으로 재편성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6세기 초반에 東國ㆍ北陸지역으로의 물류의 이동이 용이하고 고구려와의 대외교섭창구로서 중요한 近江地域(현 滋賀縣)으로 이주되었다고 보인다. 이 지역의 비파호를 이용한 농경지 개간 등의 경제적 목적도 이주의 한 요인이었다.
Ⅲ장에서는 6세기 초반에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백제계 이주민들이 近江地域에남긴 고고자료를 통해 그들의 존재양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주거형태로서 벽주건물, 매장시설로서 횡혈식석실분, 그리고 신앙대상으로서 사원의 조영은 이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벽주건물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에 거주하고 있던 집단들이 군집분으로서 횡혈식석실분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사원은 7세기 전반기에 조영되었고, 最古의 사원은 穴太지역의 穴太廃寺 창건가람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백제계 이주민은 6세기 초부터 이주하기 시작하여 7세기 전반에는 이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Ⅳ장에서는 近江地域에서 활동한 백제계 이주민의 동향을 6세기부터 7세기 말의 백제 멸망 이후까지 살펴보았다. 특히 667년 近江 大津宮으로의 천도는 국내외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天智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국내적으로는 귀족세력들의 반발이나 親 新羅ㆍ親 唐세력과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국외적으로는 唐ㆍ新羅의 공격에 따른 방어체계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지역이 천도의 후보지로 선택된 것은 6세기 초반부터 이 지역에 이주한 백제계 이주민들의 경제력과 정치력에 대한 고려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백제계 이주민 세력을 포섭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작용하였다.
天智의 死後 大友皇子와 大海人皇子(天武)와의 갈등은 ‘壬申의 亂’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는 왕위 계승싸움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天智期에 행해진 무리한 방위사업과 각종 노동력 징발에 따른 畿內 귀족세력과 지방호족들의 불만의 표출이었다. 결국 天武가 승리하여 즉위하였다. 백제계 이주민은 天智期에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술 및 지식계통의 관료로서 중용되었다. 이 시기의 唐의 침공에 대한 위기감이 이들이 중용되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天武期에는 이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百濟王氏나 승려들의 활동이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임신의 난’에서 승리한 天武는 近江地域의 이주민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고, 다시 畿內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고 있는 상황 속에서, 近江地域의 백제계 이주민에게 중앙으로의 진출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近江地域의 백제계 이주민은 天武에 의한 불교장려사업 가운데 승려가 되거나 사원조영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참고 자료

노중국, 2003, 『백제부흥운동사』, 일조각
박천수, 2007, 『새로 쓰는 고대한일교섭사』, 사회평론사
山尾幸久 著, 정효운 譯, 2005, 『日本 古代 王權ㆍ國家ㆍ民族 形成史 槪說』, 제이엔씨
이남석, 2002, 『백제묘제의 연구』, 서경문화사
조원창, 2004, 『백제 건축기술의 대일전파』, 서경문화사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백제유민들의 활동』,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7권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백제의 문물교류』,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10권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7, 『백제의 건축과 토목』,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15권
山本孝文, 2006, 『三國時代 律令의 考古學的 硏究』, 서경문화사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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