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이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된 과정을 서술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21.09.11
- 최종 저작일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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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여성이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된 과정을 서술하시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 여성이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된 과정을 서술하시오.
2. 일본 신중간층의 형성과 그 생활난에 대해 서술하시오.
3. 거투르트 지킬이 정원 디자이너라는 업종을 개척해 간 과정에 대해 서술하시오.
4. 인디언 혼혈 여성 ‘산비둘기’가 집필한 소설 「혼혈인 코지위아」의 내용에 대해 서술하시오.
5. 1984년 알제리 의회에서 전격 가결된 가족법에 대해 서술하시오.
본문내용
일본군 위안소는 오랜 기간 넓은 지역에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위안소가 생긴 것이다. 일본군의 요청으로 처음 위안소가 생긴 것은 중국 침략 과정에서였다. 중국의 동북 지역을 공격하고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은 다음 해 상하이로 전선을 넓혔다. 이때 최초로 일본 해군에서 최초로 위안소를 열었는데 이어서 육군에서도 ‘위안부단’을 조직했다. 일본군이 중국인 여성을 강간하여 중국인의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것을 막고, 병사들이 성병에 걸려 병력이 저하되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에서였다.
1941년 일본은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싱가포르, 필리핀, 버마, 인도네시아 등을 공격했고, 위안소도 설치했다. 위안소 설치는 일본군의 병참시설의 일부였다.
일본이 지배하던 시기, 조선 여성들은 제도 교육에서 소외되어 취업 선택지는 좁았으며 그런데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빈곤상태로 억압적인 조건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업사기나 정신대를 빌미로 한 군 위안부 동원이 일어났다. 일본은 조선 여성들이 지원병 징병제도에 협조하고 전쟁의 응원부대로 동원하여 위문대나 출정 군인을 위로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했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을 대신해 일할 노동력으로서 농촌과 공장에서 여성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동원되었다. 조선인 여성들은 조선인 남성들이 군수물자 생산 등의 노동력과 병력으로 내몰린 틈을 메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1940년대에 들어서는 조선 여성들도 적극적인 동원의 대상이 되었다. 1941년 9월부터 11월에 조선총독부가 실시했던 국민개로운동은 학교와 청년단 등을 근로보국대로 결성하여 근로봉사를 시켰는데, 14~25세의 비혼 여성도 편성대상이었다. 1943년 후반부터 일본은 여성의 노동 동원을 한층 강화했고, 1944년 초부터 조선에서 여자 근로 정신대의 결성이 이어졌다. 정신대란 전시 체제에 조선총독부의 일상적인 동원에 대해 일컫는 말이었다.
참고 자료
여성의 삶과 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