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 프랑스 역사 (브루봉 왕가 ~ 제5공화국까지)
- 최초 등록일
- 2004.10.24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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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브루봉 왕가
2.대혁명후 프랑스
제1공화국
7월 왕정
왕정복고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제4공화국
제5공화국 등
본문내용
1.앙리4세-신교도이지만 구교도로 전환 , 신교도에게도 의식을 할 수 있도록 인정했다.(낭트칙령)
2.루이13세-어린나이에 왕이 되었고 ‘마리드 드 메디치’가 섭정을 했다.
3.루이14세-5살 때 왕에 올라 절대왕정시대를 열었다.
-‘안느 도트리슈’가 섭정을 했다.
-‘마자렝’은 대귀족의 반란 , 프롱드 반란을 진압하여 귀족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유럽전체 30년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을 맺는다. 이 후로 프랑스는 많은 영토를 얻었다.
-루이14세는 마자렝이 죽고나자 친정을 선언했고 ‘콜베르’의 도움으로 프랑스의 태양왕이 된다.
-베르사유궁을 축조하기 시작하고 절대주의 왕으로서 전유럽을 군림했다.
-수많은 예술가 등장하며 프랑스가 유럽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고전주의가 극성을 부리며 국방,문화예술,경제적으로 유럽에서 중심이 되었다.
-낭트칙령이 철회되면서 신교도들을 업압했다. 개종하지 않으면 추방시켰으므로 이 때 많은 산업,상업자본들이 빠져나갔다.
철저하게 독재,전제정치를 하고 식민지건설, 궁정의 사치, 수많은 전쟁으로 재정 약화했다.
4.루이15세-루이14세의 아들 필립 도를레앙이 섭정했다.
나중에 친정하면서 7년전쟁에서 프랑스는 지면서 캐나다, 루지애나주, 인도를 영국에게 넘겼다.
-18세기 지성적, 예술적 측면에서 유럽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
-계몽주의가 프랑스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브루주아. 귀족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보급했고 계몽주의는 사상적 역할을 하면서 이후 자본주의의 모태가 된다.
5.루이 16세
-1789년에 대혁명이 일어남
-브루주아의 힘이 상당히 커있을 때다.
-튀르고는 중농주의 대표적 학자이고 재정개혁을 착수했다.
-재정위기가 점점 심해지면서 선대때부터의 위기가 한번에 몰려서 심해졌다.
흉작과 콜레라등의 혼란으로
-3부회가 두 번째로 소집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시민혁명의 모태,자본주의의 근간,브루주아에 의한 혁명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