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정리 (1945~1961)
- 최초 등록일
- 2023.06.06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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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정리 (1945~1961)"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1945년
2. 1946년
3. 1947년
4. 1948년
5. 1949년
6. 1950년
7. 1951년
8. 1952년
9. 1953년
10. 1954년
11. 1955년
12. 1956년
13. 1958년
14. 1959년
15. 1960년
16. 1961년
본문내용
· 1945
① 8.15 광복
② 8월 15일 직후, 여운형 등은 일본으로부터 행정권을 인수받기 위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가 9월 7일 발전적 해소라는 미명으로 이를 해산하였다.
③ 1945년 9월 7일 미군정 출범, 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부 포고 제1호를 통해 미군이 직접 한반도를 통치하는 미군정을 선포하였다.
④ 1945년 12월 12일 군정청 기구는 한인화 정책에 따라 양국장제를 실시하고 각 부서에 미군 장교 1인과 한국인 관료 1인을 임명하여 행정 기구를 운용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이 직접 통치하고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친미 인사를 육성하는 방법으로도 활용되었다.
· 1946
①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② 공동위원회는 본질적으로 한국통일을 위한 어떠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화합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이 친미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주장했고, 소련은 소련대로 친소적으로 통일되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1946년 5월 6일 미소공위가 무기한 휴회됨으로써 1차 협상이 결렬되고 이 무렵에 이승만의 '정읍발언'으로 남한만 단독정부 수립 운동이 전개되어가자, 중도파세력들은 '좌, 우 대립이 계속되고, 이대로 가다가 미소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려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남북은 결국 분단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등 중도파 정치인들이 주도하여 좌우합작위원회를 결성(1946년 7월)하고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좌우합작운동은 최종적인 목표가 좌파, 우파세력 등 사상을 넘어서 한반도 내에 남북한이 하나로 통합되어, 중도적 사상의 임시 통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좌익과 우익 세력들 간의 연대를 시작해서 합작운동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서울과 평양 간의 남북연합을 추구하는 것, 마지막 최종적으로 소련과 미국 등 열강 외세세력들을 설득하여 '통일 임시정부'를 하루속히 추진하도록 하고, 이런 단계들을 거쳐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기시키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