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외관계사 - 중간고사 A+족보
- 최초 등록일
- 2021.04.09
- 최종 저작일
-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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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대외관계사
2. 한국대외관계사서술형
본문내용
① 고구려, 백제의 성장
-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과 접촉한 국가는 고구려
- 고구려와 백제는 낙랑군과 대방군이 양국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직접 충돌할 기회가 없었음.
(but 고구려에 의해 낙랑군이 축출되고 대방군이 멸망한 이후 양국의 충돌은 불가피했음)
- 당시의 국제관계는 백제-왜 연합에 고구려-신라가 대항하는 형세로 전개되었음.
② 고구려의 중국 군현 축출
- 고구려의 초기의 대외관계는 중국, 특히 한이 설치한 낙랑군과 후일 공손씨가 설치한 대방군과의 대립 속에서 전개되었음.
- 한과 남쪽 진국의 중간에 위치한 조선은 진국 등이 한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금하였음.
→ 즉, 중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고 했음. (한은 이러한 조선의 행동을 불쾌하게 여김)
- 한의 무제는 수륙 양면으로 군대를 보내 조선을 침략하였음.
좌장군 순체는 요동을 거쳐 조선으로, 누선장군 양복은 5만 군사를 거느리고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조선의 수도 왕검성으로 쳐들어갔음.
→ 조선왕이 자신에게 입조하지 않고, 이웃한 국가가 한과 직접 교통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것이 침략의 이유였음.
- 1년에 걸쳐 맞서 싸웠지만 대신 성기가 결국 순체의 지시를 받은 인물들에게 살해됨으로써 왕검성은 함락되고 조선은 멸망하게 되었음.
- 한이 조선을 멸망시킨 그 해에 조선의 영토 안에다 낙랑, 진번, 임둔의 세 군을 두고, 그 다음해에는 압록강 중류 일대에 현도군을 두었음.
- 후한 말에 접어들면서 요동의 공손씨가 세력을 떨쳤고, 이후 공손씨는 대동강 유역의 낙랑군을 지배하고 3세기 초에는 오늘날의 황해도 지방에 대방군을 설치하였음.
③ 백제의 성장
- 고구려에 비해 국가의 출발은 늦었으나, 한강 유역의 점유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함.
- 백제의 획기적인 발전은 근초고왕을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