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궁궐
- 최초 등록일
- 2017.11.29
- 최종 저작일
- 2017.11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 궁궐이란
① 왕이 정치를 하던 곳 ② 왕의 가족들이 살던 곳 ③ 관료들이 머물며 직무를 보던 곳
I. 경복궁과 다른 궁궐들
1)경복궁
* 건축역사
- 1394(태조3) 태조가 한양(고려의 남경)의 행궁에 머물면서 그곳을 도읍 터로 내정하여 1395(태조4) 완공함. ‘左廟右社’의 체제에 따라 경복궁의 좌우에 종묘와 사직 배치하고 4대문, 즉 흥인지문(동)·돈의문(서)·숭례문(남)·소지문(숙정문)(북)을 세우고 중앙에 보신각 설치하여 ‘仁義禮智信’의 유교 덕목을 건축물에 이념화.
- 정종 원년에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였다가 태종대에 한양으로 재천도하여 세종 때 완성(755칸)
-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명명한 이는 정도전으로 ‘경복’은 『시경』 주아편에 나오는 말로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큰 복(慶福)을 도우리라’에서 인용함.
- 1400 11 이방원이 왕위를 물려받고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이궁을 짓도록 명함. 경복궁 외에 새로운 궁을 짓도록 한 것은 정통성의 한계 때문? 자신이 정적과 이복동생들을 죽인 곳이기도 함 ⇒ 법궁인 경복궁에 대해서 이궁인 창덕궁을 만들면서 조선 최초의 법궁-이궁 양궐체제가 형성됨.
- 임진왜란 때 조선의 궁궐들이 소실되었는데 경복궁은 1865~1868(고종5) 완성하여 다시 조선의 법궁으로 역할을 함.
* 경복궁의 출입문인 광화문은 1426(세종 8년) 집현전 학사들이 대문의 이름을 광화로 명명 함. ‘서경’ 요전에 나오는 말로 광피사표(光被四表) 화급만방(化及萬方) - 군주의 덕인 빛이 사방에 덮이고 바른 정치(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으로 그것이 이 집 주인 되는 자의 임무임
- 임진왜란 때 광화문 소실되었다가, 1868년 경복궁 중건시 다시 서울의 얼굴로 등장함. 일제가 조선을 합병하면서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총독부 청사 설립할 때 광화문도 철거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