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효자, 최루백[崔婁伯] (삼강행실도 효행록[孝行錄]을 중심으로) 한국역사학과 20130287 이름: 최인호 1.최루백과 삼강행실도의 고찰 최루백, 그는 고려 인종 대에 과거에 ... -참고문헌 김용선 편, 「최루백 묘지명」·「최루백 처 염경애(廉瓊愛) 묘지명」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1. ... 최루백의 가족사항 최루백(崔婁伯, 1110년 ~ 1205년)은 고려의 문신이다. 호는 모헌(慕軒)이고 시호는 효숙공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체험학습 장소 최루백 효자비각 - 1986년 5월 20일 화성시의 향토 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최루백의 효자비각은 고려 의종 때 최루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비각이다 ... 원래의 비각은 봉담면 수기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 위치 일대가 최루백의 사패지(賜牌地)였다고 한다. - 위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지지대비 -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고려의 효자 최루백 나. 조선 말기의 효자 박태성 다. 느낀 점 3. 현대의 효행 미담 가. 황진영 군 사례 나. 금병철 씨 사례 다. 느낀 점 4. ... 당시 15세이던 최루백은 아버지가 호환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주위의 만류에도 홀로 도끼 한 자루를 들고 그 호랑이를 찾아가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야 만다.
이는 ‘최루백’이 수원 지방의 향리 출신이었음을 알려 준다. 또한 ‘최루백’은 효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 묘지석을 통해 본 염경애와 가족의 삶 1) ‘염경애’는 누구인가 2) ‘최루백’은 어떤 인물인가 3) ‘염경애’와 ‘최루백’의 결혼 생활 4. ... 아들 딸들이 있어 나르는 기러기떼와 같으니 부귀가 세세로 창성할 것이로다. 2) ‘최루백’은 어떤 인물인가 ‘최루백’의 아버지는 수원 최씨의 시조이다.
효자 최루백은 화성시를 대표하는 설화이자 효자로써 널리 이름을 알렸다. 설화를 통해서도 효가 강조되고 있다. ... 구실을 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틈 있을 때마다 사냥을 다녔고 어느날 사냥을 하던중 호랑이 한 마리가 엄습해왔고 동네사람들이 난리가 났지만 호랑이굴로 들어갈 사람은 없었고 이에 효자 최루백이
예를 들어 고려사 열전과 삼강행실도에 나오는 최루백의 경우를 보면 '최루백은 고려 의종 때의 문신으로, 열다섯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사냥하다가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였다. ... 최루백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도끼를 메고 호랑이를 추적하였다. ... 최루백은 도끼로 호랑이를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꺼내고 호랑이의 고기는 항아리에 담아 시내 가운데 묻어두었다.
비지류(碑誌類) 묘주(墓主)의 생평과 공적을 노래하고 덕을 찬송하는 내용을 나무나 쇠나 돌에 새겨, 무덤 근처에 세우거나 무덤 속에 묻는 문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묘지명(墓誌銘)· 묘비명(墓碑銘)· 묘갈명(墓碣銘)·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을 비지류라고 하는데, 논자에..
그렇기에 남편 최루백이 쓴 묘비석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염경애는 개경의 권세 있는 귀족집안의 딸이었고, 남편 최루백은 수원 향리의 아들이었다. ... 그래서 조선시대의 교과서에 해당하는 삼강오륜도, 오륜행실도 등의 책들에도 최루백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 최루백은 47살의 나이로 죽은 아내를 위하여 묘비에 글을 남긴다. ... 염경애의 남편 최루백은 고려사 열전에 실릴 만큼 효자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하여 최루백의 경우도, 귀족의 딸인 염경애와의 결혼이 출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 또한 남편 최루백의 묘지석에서는 염경애 사후에 유씨라는 여자와 또 결혼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조선과 달리 고려때는 여성의 재혼이 허용됐던 것일까? ...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 글의 주인공부터 살펴보면 고려시대 정6품에 해당하는 우사간, 좌사간의 지위에 있었던 최루백의 아내였던 염경애로써 이 묘지석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남편이 아내에
고려 시대에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고 최루백과 염경애의 경우처럼 부부간에 돈독한 사람을 나누는 일도 자주 보였다. ... 남편인 예부낭중 최루백이 그녀의 묘지명에다 둘이 함께 한 23년을 그리워하며 실명을 적었다. 그냥 본관을 표시해서 '봉성현군 염씨'라고만 써도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