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설화 및 지명유래, 전설
- 최초 등록일
- 2009.04.12
- 최종 저작일
- 2006.12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① [수원시 - 문헌상으로 본 지명 변천] 수원의 유래
② 수원의 설화Ⅰ- 수원 나그네의 전설
목차
① [수원시 - 문헌상으로 본 지명 변천] 수원의 유래
② 수원의 설화Ⅰ- 수원 나그네의 전설
③ 수원의 설화 Ⅱ - 팔달산(八達山)
④ 수원의 설화 Ⅲ - 칠보산 용화사 미륵불
⑤ 수원의 설화 Ⅳ - 효자 최루백
⑥ 수원의 설화 Ⅴ - 사낙골
⑦ 수원의 설화 Ⅵ - 퉁소바위
⑧ 수원의 설화 Ⅶ - 홀란이 묘
⑨ 수원의 설화 Ⅷ - 벼락감투 쓴 박서방
⑩ 수원의 설화 Ⅸ - 발가벗고 삼십리
⑪ 수원의 설화 Ⅹ - 능참봉
⑫ 수원의 설화 Ⅺ - 계모와 전실 아들
⑬ 수원의 설화 Ⅻ - 상광교동 정선생의 지혜
⑭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仁溪洞)
⑮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팔달구(八達區)
⑯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勸善洞)
⑰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西屯洞)
⑱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장안구(長安區)
⑲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練武洞)
⑳ [지명유래 및 전설 -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榮華洞)
본문내용
① [수원시 - 문헌상으로 본 지명 변천] 수원의 유래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이름은 변하기 마련이다. 지명은 단순히 지표상의 한 지역을 다른 곳과 구분짓기 위해 붙인 이름만은 아니다. 그 이름 속에는 그것을 지어붙인 당시의 언어는 물론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까지 담고 있다는데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지명의 형성은 그 곳 주민의 정신 세계의 표출이며 지명의 변천은 그 지역 역사의 한 줄기이다. 아득한 옛날 부족 국가 시절, 마한(馬韓)에 `모수국(牟水國)`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중국측 사서는 적고 있다. 이 모수국(牟水國)이 지금의 어디인지는 정확히 비정할 수 없으나, 삼국 시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던 5세기 말엽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까지 불렀다는 `매홀(買忽)`과 대체로 동일한 지명일 거라고 추정한다. 중국측 기록인 모수(牟水)와 우리측 기록인 매홀(買忽)은 당시 어떻게 불렀는지 정확히 재구할 길은 없다. 다만 이 땅 이름은 비록 한자로 적었으나 우리 고유어임이 분명하고, 또 `모(牟)`나 `매(買)`는 발음상 물[水]과 관련된 어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모수(牟水) 혹은 매홀(買忽)로 기록된 고유 지명은 신라의 삼국 통일과 함께 큰 변화를 겪는다. 순수 고유어로 불리던 삼국의 땅 이름이 2자(2子)로 된 한자어 지명으 로 바뀌는 지명 개혁을 맞이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757년(경덕왕 16)에 이르러 매홀(買忽)은 지명의 본뜻을 살린 한자어 `수성(水城)`으로 개칭된 것이다. 물론 지명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원주민 사이에는 이후 오랫동안 매홀(買忽)이란 고유명이 쓰였겠지만 수성(水城)에서 비롯된 `수주(水州)`, `수원(水原)` 등의 `수(水)`자계 행정 지명이 점차 이 지역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잡게 되었다. 한자어 지명 수성(水城)은 고려 건국 초(940년 : 태조 23) 중국식을 모방하여 수주(水州)로 개칭한 것을 필두로 `수주목(水州牧)`을 거쳐 지금처럼 수원(水原)이란 이름이 등장한 시기는 1310년(충선왕 2)에 이르러 `수원부(水原府)`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이 이후의 변천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군(郡)․성(城)․주(州)․부(府)․도호부(都護府)․목(牧)․읍(邑)․시(市) 등은 행정 개편이 있을 때마다 승격과 강등을 반복한 행정명의 변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후 수(水) 또는 수원(水原)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이름인 `화성(華城)`이 탄생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