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영의 신정국문 1905년(광무 9)지석영이 국문 실시에 관하여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 모두 6개 항목으로 된 맞춤법통일안으로, 고종의 재가를 얻어 공포하였다. ... 설립 동기는 19세기 말부터 문자문제가 제기되고 공동연구에 의한 통일된 문자체계의 필요성을 느끼던 터에 1905년 7월 정부가 공포한 지석영의 이 내용상 문제점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막상 지석영은 박영선으로부터 우두법에 대한 책을 받았지만, 서양 의학에 기초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실험할 수 있는 두균(痘菌)도 얻을 수 없었다. 1879년 ... 부산에 와 있는 일본인들 사이에 우두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석영은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갔고 일본 해군이 부산에 세운 제생의원(濟生醫院)의 마쓰마에 원장으로부터 서양 의학의 ... 일본에서 지석영은 의 우두종계 소장 기쿠치로로부터 두묘 제조법과 저장법, 어린 송아지의 사육법 및 두장(痘醬)을 채취하는 방법 등을 습득한 후 귀국했다. 6·25전쟁 중이던
繭箚 놓은 것은, 강위의 식을 따랐으며, 중성 독용 11자 중에서 ‘=’(‘이으’의 합음)를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 지석영의 창안이라고 할수 있다. ... 지나지 못하고, 그 글자의 이름을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4) 新訂國文(신정국문)의 자모 명칭 (한글맞춤법 강의, 이희승 저 p34, 11줄~p34, 밑에서 4줄까지) 지석영이
그러나 종두법에 대한 산발적인 지식들은 국민보건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후 일본을 방문한 박영선은 을 구입하여 문하생이던 지석영에게 전해주었다 ... 종두법에 관심을 가진 지석영은 부산에 일본인들을 위해 설립된 제생의원을 방문하여 종두법을 배웠다. 1879년 12월 말경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인 충주군 덕산면에서 처음 종두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