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향아악은 종묘·사직·선농·선잠·문묘 등의 제사의식에서 연주된 아악의 총칭이다. 세종대왕이 1430년 8월 신하들에게 명령함으로써 악제정지 작업이 시작되었다. ... ·사직·선농·선잠·문묘 등의 제례악 연주 때 사용되었다. ... 아악정비를 위한 아악기 제조는 악기감조색이 설치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427년 5월 이후부터 남양의 경석으로 편경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1428년부터는 새로 만든 편경이 종묘
이러한 종묘와 사직은 정궁인 경복궁과 더불어 서울의 중심 축선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시 계획요소로 작용하였다. ... 종묘의 배치 종묘는 유교사회의 도시건설 원칙인 좌묘우사를 따른 것으로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쪽을 바라보아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먼저 세우고, 이듬해에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건립하였다 ... ‘조선의 역사’ 종묘 건축공간론 종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
천신제는 하늘을 위한 제사로 원구제가 있으며, 지신제는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올리는 사직제와 같이 땅을 위한 제사를 말한다. ... 이중 오늘날 행해지는 제사는 종묘 대제와 문묘 석전제로 종묘 대제 때 연주하는 곡은 종묘제례악, 문묘 석전제 때 연주하는 곡은 문묘제례악이라고 부른다. ... 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곡과 무용 일체를 의미한다.
백성인가 임금인가 종묘사직인가? 에 대한 고민 내 대답은 백성이었지만, 임금의 선택은 자신 즉 ‘임금’이었다. ... 비록 전쟁에서는 졌고 왕과 종묘사직은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었으나 백성은 살아남아 조선의 뿌리를 끝까지 이어 나가겠다는 기대와 희망 말이다. ... 그러나 당시 조선이 유교 국가였던 점, 종묘사직을 책임지는 대신들이 모두 대의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선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명길의 주장은 획기적이고도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낱 종묘·궁실의 아름다움과 고을 백성들의 만물의 풍부하고 성대함과 예절·음악·형벌·정사의 문명과 인정(仁政)·은택·교화가 넘치는 것만 볼 뿐, 조종의 덕이 오래 쌓여 ... 정인지는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은 총명하고 슬기로운 성인의 덕과 세상에 빼어난 식견을 지니시어 개국 창업의 책략을 결정하시고 국난을 평정하고 사직을 안정시켰다고 하였습니다. ... 태종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성인의 덕과 세상에 빼어난 식견을 지니시어 개국 창업의 책략을 결정하시고 국난을 평정하고 사직을 안정시켜 그 신성한 공업이 위대하여 사람들의 이목에 빛나고
제향 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망묘루는 향대청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축물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 종묘 답사 보고서 주제 : 종묘의 건축 지난 8일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종묘를 다녀왔다. ... 종묘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제물, 제기, 운반구를 보관하고 제례에 쓰이는 제수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재실,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유교 의례의 표상, 제사 국가의 제사 - ①대사와 ②중사 ③소사로 나뉨 ① 대사 - 사직 · 종묘 · 영녕전으로 나뉨 · 일 년의 네 번, 봄과 가을 가운데 달 및 12월의 납일 · ... 왕의 조상들, 즉, 죽은 왕들과 왕비들에게 제사 · 원칙은 태조와 4대조까지만 제사이지만, 태종이나 세종과 같이 공이나 덕이 많은 왕들도 제사를 지냄 ·4대가 지난 왕들의 신주 → 종묘에서 ... - 그 지방의 토지신과 곡식에 대한 제사, 서울의 사직 대제를 축소 ·정기적인 제사외에도 기우제나 기곡제도 지냄 성황단 - 주인 없는 귀신· 전망자 등 잡귀신의 제사하기 위한 재단
) : 궁의 좌측, 사직 : 궁의 우측)- 한양의 자연 공간은 『주례』가 제시한 정도의 평탄한 땅을 제공할 수 없었음. ... 조영의 기본원칙(『주례』동관「고공기」)을 충실히 따름- 왕도의 여러 시설은 궁궐을 중심으로 '전조후시 좌묘우사'의 배치- (조정(관아) : 궁의 전면, 시장 : 궁의 뒤, 태묘(종묘
제1장 궁궐 1. 어원과 제도1) 궁궐의 어원과 제도 ① 宮(궁)은 상형문자로서 한 대 이후 권위 있는 건물에 쓰임 ② 闕(궐)은 방어를 위해 설치한 전각에서 비롯하였음 ③ 경복궁의 동서 십자각과 창경궁 홍화문 양 옆의 각루는 궐의 잔영으로 볼 수 있음 ④ 고려에서는 ..
참고로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사당으로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사직(社稷)은 농사와 곡식의 신인 사직(社稷)을 의미했다. ... 실제로 왕은 민생이나, 국방, 외교와 같은 세속적 업무보다도 종묘(宗廟) 제사나 사직(社稷) 제사와 같은 사제의 업무를 더 중히 여겼다. ... 왕들에게 제사 지내는 종묘는 조선이 하늘의 명을 받아 왕에서 왕으로 이어오는 나라임을 나타내 주는 곳이고 사직은 왕이 백성을 풍족하게 하려는 왕의 모습을 상징했기 때문에 조선의 그
따라서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나라를 건국하고 번영시켰던 왕과 왕실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심지어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 대신들에게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 남사당놀이의 의의 및 의견 2장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2장 1절. 종묘 2장 2절. 종묘제례 2장 3절. 종묘제례악 2장 4절.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의의 및 생각 1장 1절. ...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의의 및 생각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최고의 품격으로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라는 가치관을 국가적인
) : 궁의 좌측, 사직 : 궁의 우측)- 한양의 자연 공간은 『주례』가 제시한 정도의 평탄한 땅을 제공할 수 없었음. ... 조영의 기본원칙(『주례』동관「고공기」)을 충실히 따름- 왕도의 여러 시설은 궁궐을 중심으로 '전조후시 좌묘우사'의 배치- (조정(관아) : 궁의 전면, 시장 : 궁의 뒤, 태묘(종묘
丘)·사직(社稷)·태묘(太廟)의 제향과 더불어 문묘제례에 썼다. 그러나 고려 말·조선 전기를 지나는 동안 점차 제례절차·악기·악장 등이 어지럽고 무질서해졌다. ... 그 종묘악장이 중광장(重光章)이다. 17세기 종묘악장에 대한 황정욱(黃廷彧)·권우(權?)·이정구(李廷龜)·송준길(宋浚吉)의 논의는 『악원고사』(樂院故事)에 전한다. ... 종묘제례악은 종묘 안에 각기 임금과 왕족의 신위를 모신 정전[政殿]와 영녕전[祖廟] 두 사당에 제사 지낼 때 연행되는 악(樂), 가(歌), 무(舞) 일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