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 찰스 데무스, 찰스 쉴러, 스튜어트 데이비스 존슬론 1912년 조지벨로우스 1909년 그랜트 우드 ... 리베라 1932-3년 스티글리츠 1907년 조지아 오키프 1923년 찰스 데무스 1939년 스튜어트 데이비스 ... 대상이 없이 색, 점, 선, 면 등의 순수 조형요소로만 그림을 그림 대표작가 : 칸딘스키, 몽드리앙, 말레비치 등 칸딘스키 트벤튼, 에드워드 호퍼, 벤샨, 도로시아 랭, 디에고
프리다는 자신도 이런 이미지를 통해 고통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다.{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민음사 P91 티나 모도티를 통해 디에고를 알게된 프리다는 곧 디에고와 ... 지금도 프리다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디에고와 리베라의 집의 구조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에도 나오는 집은 똑같이 생긴 두 채의 집으로 두 집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다. ... 디에고는 계속해서 바람을 피웠지만 그녀는 이렇게 평생 디에고를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이 시기의 그녀의 그림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유명한 화가이자 오입쟁이같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떠들썩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술과 약물 중독이 그녀를 47세의 나이에 죽게 만든다. ... (1939) 멕시코 시티, 현대미술관 장애자, 불구자로서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는 신, 구세대 사이에서 그녀의 창조적인 원천은 언제나 그녀의 특유한 삶의 경험이었다). ... 영화의 한 장면에서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내 인생엔 두 가지 대형사고가 있었어. 차사고와 디에고, 바로 당신!' 라고 이야기한다.
디에고 리베라를 환영하는 뉴욕 사람들, 뉴욕의 모든 자극들을 즐기는 디에고의 모습과 함께 프리다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 디에고로 인해 상처입은 프리다가 디에고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 바람둥이인 디에고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다른 여인들과 온갖 염문을 뿌리며 다니고, 그러한 디에고의 생활방식은 프리다와 함께 미국에 갔을 때에도 바뀌지 않는다.
또 루벤스,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회화, 리베라, 무리요, 수르바란 등 에스파냐 화가의 작품수집도 뛰어나다. ... 그러므로 스페인 3대 화가(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고야))를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이 좋다. 2)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Museo de Thyssen Bornemisza
멕시코에는 디에고 리베라, 호세 끌레멘떼 오로스꼬, 다비드 알파로 시께이로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3명의 화가가 있다. 이들은 멕시코의 벽화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 이들이 수도 멕시코시티에 그린 벽화들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디 에고 리베라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에 벽화를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 2-2-2.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2-2-3.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2-3. 벽화미술의 정립 2-3-1. 리베라 2-3-2. ... 리베라 [창조]1922년에 리베라가 제작한 창조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첫 작품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했다"고 말했다 공립학교는 '日'자 모양의 3층 건물로, 건물 내부의 회랑마다 리베라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리베라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영화는 프리다 칼로의 정치성은 물론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했던 중요한 '혁명 정신'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가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일까? ... 그녀를 이야기 할 때 디에고는 빠질 수 없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녀는 디에고와 평생을 사랑했고 미워했으며 그는 프리다의 삶의 반쪽이나 마찬가지다. ... 그리고는 곧바로 프리다의 어린 시절로 플래시 백 되어 사고 장면과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 모습, 성장하여 디에고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리베라는 포드의 의뢰로 1932년에 디트로이트 미술학교의 안뜰의 장식을 담당하였는데 리베라는 자신의 작품에 라고 제목을 붙이고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융합을 묘사하였다. ... 기계주의적인 관리 기술이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도 오늘날과 같은 대중사회의 모습을 창출시켰다. 3) 포디즘과 이데올로기 록펠러센터에 레닌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벽화가 디에고 ... 공산주의자인 리베라는 포드가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였다. 30년대의 사회주의에 있어서, 자본주의에 있어서, 나아가 파시즘에 있어서조차도 대량생산 시스템의
평생을 두고 프리다에게 찾아온 시련 중 가장 큰 것은 물론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었지만 그녀를 찾아온 수많은 시련 중 가장 첫 번째 것은 프리다가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1913년 ... 그는 완전한 자유를 원해. (…) 내가 가장 슬픈 것은 디에고와 내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거야. ... 그는 내가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모든 생활을 숨기고 있어. (…)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디에고야.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일군의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들과, 특히 [해골]등의 격렬한 선전용 포스터와 판화로 민중미술의 한전형을 ... 그런가 하면 리베라가 파리 유학시절 입체파에 심취했던 것을 생각하면, 노도장의 건강한 육체를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낸 페르낭 레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