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을 누렸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황제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라고는 확언할 수 없는 이 시대 사대부 귀족들의 성향은 은인자중적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유(병)지[有(秉)志]’를 위한 ‘은인자중’의 처신과 ‘절주신언’이 당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도출된 현실적인 관점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리고,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난세에 살아남고 뜻을 이루는 첩경인 듯 싶다. ... 따라서 누군가가 나에게 귀에 달콤한 말을 하면 멀리 경계를 해야 하고 내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을 은인으로 알고 대우해주어야 한다.
짐승도 자신을 살려준 은인을 기억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인연법은 무섭고 정확하며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삶의 법칙이다. ... 자중자애는 자기치유의 시작이다. 자기 자신을 친구로 삼아도 된다. 긍정적인 삶을 위해 기억의 창고에는 긍정적 경험의 수집이다. 긍정적 경험의 지속이다. 명상의 실천이다.
혜강의 은인자중과 절주진언계 풍전등화와 같은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일신과 가물의 멸문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한 은인자중한 처신은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최선의 처세였던 것 같다. ... 혜강의 은인자중과 절주진언계 P. 1 Ⅲ. 현재 시각에서 바라본 죽림칠현 P. 2 Ⅳ. ?康의 家誡 와 ‘有志’論을 읽고 나서 P. 2 I. ... 사마소 정권에 산도가 혜강을 자신을 대신에 혜강을 관직에 추천하자 혜강은 답서인 여산거원절교서를 보내 자신의 은인자중적인 유지론을 견지하였다.
이는 ‘은인자중’한 것이라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 본론 부분에서는 ‘병지’와 ‘은인자중’에 관해 말하고 있다. ... 이런면에서 혜강은 평소 ‘은인자중’을 말한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현실에서는 은인자중과 동떨어진 것 같으며 보다 넓은 안목을 가지고 처세술을 펼쳤어야 할 것이다. 2) 혜강의 ‘절주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