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한서(漢書)》의 『예문지(藝文志)』에서는 서한(西漢) 유흠(劉欽)이 지은 《칠략(七略 )》에 근거하여 유가 경전들은 제1부류인 『육예략(六藝略)』에 집어넣고, 그 외의 선진( ...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이 선진시대부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전한대(前漢代) 유흠(劉歆)과 사마 담(司馬談) 부자가 중국사상의 내원(來源)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가(九家) 또는 육가(六家
봉건제도를 은주대의 주요한 사회적 특징으로 인식한다면, 유흠의 논리는 은주대를 미화·강조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리고 이는 유향(劉向)·유흠(劉歆) 부자가 전한 말기 왕망(王莽)의 개혁정치에 어느 정도 연관있는 인물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 하지만 유흠의 이런 논리는 제자백가가 기존의 봉건제도라는 틀 속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전환기의 변화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와는 상반된다.
그러나 유향이 이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유흠이 이를 계승하였고, 유흠은 모든 전적의 교열을 마친 후에 그 결과를 기록하여 편찬했는데, 이 책이 바로 칠략이다. ... 사부분류법의 발달과정 유향, 유흠 부자의 칠략의 분류법은 한서예문지의 편찬에도 저본으로 사용되었으나, 진한의 통일제국 성립 후에는 그대로 적용되기가 부적절했다.
그리고 유흠(劉歆)은 “제자(諸子) 10가 중 볼만 한 것은 9가뿐”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다시 〈소설가〉로는 《이윤설(伊尹說)》?《육자설(?子說)》? ... 그리고 반고(班固)는 유흠(劉歆)의 《칠략(七略)》을 바탕으로 예문지(藝文志)를 쓴 것임으로, 적어도 서한 학자들의 관념 속에서는 〈소설〉이 〈제자(諸子)〉 속에 포함되는 것이었음이